2022/03/19 15:33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극장전 (신작)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결국 <죽은 시인의 사회>이자 <파인딩 포레스터>이며, <굿 윌 헌팅>이기도 하다. 방황하던 젊은이가 원숙한 멘토를 만나 후회와 반성, 배움과 그 기쁨을 모두 통달해 가는 이야기. 다만 안타까운 것. 영화의 선악 구도가 너무나도 명확하다는 것. 살다보면, 우리의 인생이 흑백논리 마냥 딱 나눠지고 맞아 떨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갈수록 안 들잖아. 그러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속 우리네 사회와 우리네 인생은 너무나도 이분법적이다. 나쁜 사람은 끝까지 나쁘고, 좋은 사람은 끝까지 좋음. 아, 그래서 굳이 수학이란 딱 떨어지는 학문을 끌어다 쓴 건가?


이상한 나라의 스포일러!


<굿 윌 헌팅>과 <뷰티풀 마인드>가 이미 묘사 해낸 바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에 있어 수학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수학.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그 학문으로 어떻게 인생의 진리와 그에 대한 깨달음을 영화적으로 표현 해낼 것인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또한 필시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은 영화에서 딱 한 장면으로만 등장할 뿐. 수학이 우리네 삶에 있어 대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수학자는 왜 그리 수학을 아름다운 학문이라 말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웹 드라마나 알록달록 CF에서 볼 법한 이미지로 매우 매우 간단히 설명된다. 아, 원주율을 비롯한 수학을 알면 달리는 킥보드의 두 바퀴에 대한 원리를 더 잘 알 수 있는 거구나! 아, 가게 앞에 활짝 핀 파라솔 역시 모두 수학이었어! ......지금 이거 하시려고 수학 골라잡으신 거예요?

막말로 굳이 수학 아니었어도 충분히 굴러 갔을 만한 이야기란 소리다. 파이 3.14...를 건반 계음으로 치환해서 연주하는 피아노곡? 별로 재미도 없을 뿐더러 그거 그냥 음악 과목으로 대체 했어도 되는 거잖아. 그리고 주인공 소년의 삶에 있어 킥보드 바퀴랑 가게 앞 파라솔이 뭔 소용이냐... 물론 세상만사 모든 곳에 수학이 깃들어있다- 정도의 의미인 것은 알겠어. 하지만 이건 영화잖아. 스토리텔링이 시각적으로 깃든 매체. 그렇다면 이 수학이라는 요소가 영화의 이야기에 있어 무언가 역할을 해야할 것 아니겠는가. 제목도 '이상한 나라의 음악가'나 '이상한 나라의 문학가'가 아니라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여서 더 기대한 측면이 있었다고!

나도 애저녁에 수학 포기한 사람이라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수학이라는 학문이 딱 맞아 떨어지는 정답으로 희열을 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대충 안다.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고, 또 어떻게든 맞는 답이 있는 학문. 그렇기에 오히려 그 문제풀이 과정이 더 중요한 학문. 이 요소를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과 결부시켜 충분히 더 잘 풀 수 있었던 거 아냐? 하지만 영화가 택한 건 결국 또 가족주의다. 그리고 제목 속 '수학자' 보다, '이상한 나라'에 더 방점을 찍기도 했고.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박해준이 연기한 국정원 소속 캐릭터는 왜 나온지 잘 모르겠다. 그 자체로 살아있는 캐릭터란 생각이 안 들고, 그냥 갈등 유발 요소 정도로 밖에 안 보임. 

사실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은 클라이막스 속 갈등 해결 방법이다. 연설이라. 연설... 많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그 앞에 서서 진실을 까발리는 방식으로 모든 갈등들을 일거에 해결해버리는 방식.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갈등 풀이 공식의 예문 아닌가? 하필 그 곳에 같은 만년필을 공유했던 남한 수학자가 있었다고? 그리고 그 남한 수학자는 북한 출신 수학자에게 생뚱맞은 연설 기회를 주고? 심지어 악당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정체 커밍아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영화는 말이 많은데 정작 난 할 말이 없다. 

충분히 더 잘 뽑을 수 있었던 소재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조금 뻔할지언정, 나름대로 감동적인 이야기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 버전은 왜 굳이 수학을 골라잡은 건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어정쩡한 영화. 제목보고 살짝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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