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8 14:00

문폴 극장전 (신작)


솔직히 말해 달이 지구로 떨어진다는 과격한 이야기에서 연상되는 스펙터클은 <아마겟돈> 상위 호환 정도일 것이다. 물론 달의 중력과 지구의 중력이 꼬이면서 여러 다양한 문제들이 야기 되겠지만, 어쨌거나 관객으로서 당장 떠오르는 건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지구로 떨어진다는 그 이미지인 거잖아. 고로 규모 자체는 <아마겟돈>에 비해 당연히 뻥튀기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엄청 신선한 구경거리처럼 느껴지진 않는다는 말씀. 롤랜드 에머리히를 비롯한 제작진들도 그 점을 알고 있었는지, 이번 영화에는 뜬금없이 미스테리 요소를 잔뜩 끼얹었다. 달이 떨어지는 이유가 단순 자연현상 때문이 아니라는 것. 


스포일러 폴!


답은 외계존재다. 그런데 그 외계존재의 구체적 정체도 <익스팅션 - 종의 구원자> 속 그것과 유사하다. 알고보니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현생 인류가 우주로부터 유입된 민들레 홀씨였다는 것. 우리네 조상들은 이미 다른 우주에서 번영하고 있었는데, AI와의 전쟁이 발발하며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겨우 겨우 지구라는 행성을 새로 만들어 이주했다는 비밀. 일단 여기서 부터 정신이 아득해진다. 물론 영화예술에 있어 금기시 되는 이야기는 없다. 그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든 안 되든, 충분히 지껄일 수 있는 개소리라는 거지. 문제는 <문폴>의 기본 셋팅에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초반부터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뺨치는 나노 테크놀러지 기술을 묘사해 외계인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셋팅한다. 영화 시작부터 이랬으니, 이후 외계존재와의 대결이 본격화 되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그래도 기껏해야 인류 vs 외계인 정도의 구도를 예상했던 관객들에게, <문폴>은 인류 외우주 유입설까지 제시해버린다. 그냥 우주 전쟁 벌이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그 전쟁의 시작부터 창세기까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영화였어. 이 생뚱맞은 부담감이 내 목을 콱 움켜쥐는 느낌이었다. 

정말 웃긴 건, 인류의 조상이 킹왕짱인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는 잘 몰라도 영화 속 우주 여행이 참으로 쉽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지구의 존망이 걸려 제대로된 지원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인데도 주인공 무리는 우주 여행 임무를 참으로 알맞게, 그리고 참으로 안전하게 실행시킨다. 아니, 발사 직전에 여건이 안 되서 임무 실패할 줄 알았는데 단 한 명의 공식 계산으로 그냥 우주 탐사선 발사를 강행한다고요...? 그리고 그 우주선에 딱 세 명이 타는데 그 중 한 명이 우주 여행 경험은 커녕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또 그 우주 탐사선을 발사하는 데에 오퍼레이터가 딱 두 명만 있으면 된다고요...? 심지어 그 두 오퍼레이터들도 발사 과정 중간에 대피해 자리를 비운다고요...? 우주 과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을 넘어 개소리 아닌가 싶어지는 순간들이 영화 내내 속출했다. 와! 우주 여행! 동네 마실 보다 쉽다!!

하지만 이야기나 세부 설정이 허접해도, 이런 종류의 영화는 스펙터클이 훌륭하면 다 용서가 되지 않나. 하지만 <문폴>은 그 부분에서도 용서 받지 못한다. 하다못해 감독의 전작인 <2012>에 비해서도 한참 미달이다. 그 자체로 재밌다거나 신선한 구경거리가 전무하다. 달은 끊임없이 지구 주위를 돌며 각종 재난들을 발생 시키는데, 그래봤자 빌딩 뽑아가거나 장풍 쏘기 정도임. 평가야 어찌되었든, 롤랜드 에머리히는 <투모로우>와 <2012>를 통해 재난 영화 스케일의 스탠다드를 나름대로 정립한 장본인 아닌가. 그런데 자신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이 정도 성과 밖에 못 낸다는 건... 투자자가 돈을 좀 아꼈나 싶어짐. 

사실 영화를 보며 궁금했던 건 달과 외계존재의 정체 따위가 아니라 마이클 페냐가 연기한 캐릭터의 생사 여부였다. 생각해보면 롤랜드 에머리히는 <2012>에서도 그랬다. 주인공 남자는 이혼한 상태였고, 전처의 현 남편과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 됐었지. 그런데 결국 그 전처의 현 남편이 주인공과 가족 모두를 구하고 후반부에 사망함. 그래서 남자 주인공은 아주 아주 간편하게 전처와 다시 연결될 여지를 얻게 되고. 이번 <문폴> 역시 딱 그렇다. 마이클 페냐는 아이들에게 희생적인 면모를 보여준 뒤 곧바로 사망. ......롤랜드 에머리히 이혼했나? 전처의 현 남편이 있나? 관계가 안 좋나? 이쯤되면 이건 경고 아니냐고. 


뱀발 - 검색해보니 이혼한 전력은 딱히 안 나오네. 더 무섭다. 

덧글

  • 정호찬 2022/03/28 18:59 # 답글

    에머리히 게이일 걸요.

    사실 에머리히는 이제 보여줄만한 스케일은 다 보여줬다는 느낌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나 2012 수준의 임팩트는 딱히 오는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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