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6 10:24

북 오브 보바 펫 SE01 연속극


특히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괴상하게 퍼져나갔던 유행이 이제는 멀고 먼 은하계 변방으로도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다. 나쁜놈을 주인공으로 데려와 놓고서는 개과천선의 과정도 없이 그냥 무작정 갱생시키는 것. 보바 펫은 악당 아녔어? 디자인을 겁나 잘 뽑아서 그렇지, 그냥 우주 최강의 현상금 사냥꾼 정도 컨셉으로 한 솔로 잡아다 자바에게 바쳤던 인물이잖아. 근데 왜 갑자기 다이묘 하겠답시고 타투인에 눌러앉아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곳 주민들을 돌보는 건데? 왜 자기 스스로를 정의라고 생각하는 건데? 드라마의 이런 태도는, 오히려 기존 오리지널 영화에 등장했던 보바 펫이 매력적이었던 건 결국 그 껍데기 때문이었다고 반증하는 꼴이다. 캐릭터성이야 어찌 되어도 좋으니 그 간지나는 헬멧 한 번 다시 써보자는 이상하고 안일한 태도.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어쩌면 이 모든 건 <만달로리안> 때문 아닐까-하는. <만달로리안>이 너무 많은 걸 빼앗아 가버린 거다. 상상해보자, 만약 <만달로리안>이란 드라마의 존재 자체가 없다면? 그로구와의 유사 부자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드라마가 가진 대부분의 요소들 모두 사실상 이 보바 펫의 것이었어야 한다. 그래도 무방하다고. 만달로리안 헬멧을 쓰고 절대 벗지 않는 우주 최강의 현상금 사냥꾼이란 컨셉. 이거 원래 그냥 보바 펫이잖아. 하지만 <북 오브 보바 펫>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만달로리안> 이후에 나온 후발주자다. <만달로리안>이 신나게 벗겨먹고 골수에 단물까지 쪽쪽 빨아 알차게 비벼먹고 남은 것을 <북 오브 보바 펫>은 받았단 소리다. 과연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싶은 것. 

가장 어이가 없는 건 타투인에 대한 보바 펫의 열정과 고집이다. 얘는 대체 왜 타투인 다이묘 하고 싶어 하는 건데? 아나킨이나 루크처럼 얘도 타투인 출신이야? 아니잖아, 장고 펫의 복제인간 아들로서 그 이야기가 이미 다 <클론의 습격>에 나오는데. 그럼, 뭐 그 이후 타투인에 정이라도 붙일 만한 사건이 생겼어? 그것도 아님. 실사 영화 기준으로는 자바에게 일거리 받아 한 솔로 데려왔다 루크 일행에게 터지고 살락의 주먹밥 신세 됐던게 전부고, 코믹스로 까지 그 기준을 확장해도 역시 다스베이더의 의뢰로 루크 찾아 타투인 갔던 게 다임. 그런데 고향도 아니면서 왜 이리 타투인에 집착하는 거냐고. 캐릭터의 주요 목적부터 제대로 납득시켜내질 못하니 드라마가 덜컹거릴 수 밖에. 

결국은 감독의 개성이 너무 컸던 것 아닌가 싶은 부분들도 많다. 에피소드를 나눠 연출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시즌 1 전반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바로 그 로버트 로드리게즈. 자기 색깔이 뚜렷한 감독을 전통의 프랜차이즈로 데려오려는 시도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급진적으로 보일지언정, 어쨌거나 그들이 이 세계관의 저변을 넓혀줄 수도 있을 테니. 실제로 <북 오브 보바 펫>에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취향이 적극 반영되어 있다. 타투인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는 이 은하계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의 레트로한 펑크 오토바이, <알리타>를 떠올리게끔 하는 사이보그 인간들 등등은 지금껏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확장성을 제공한다. 우주가 그리 넓은데, 뭐 이런 취향을 가진 존재들도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같은 변화의 물결을 정말 좋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정작 로드리게즈는 그것들을 잘 활용해내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이 시리즈에 이질감을 느끼게 하였다. 펑크 오토바이들의 추격전은 그 어이없는 속도감에 다른 의미로 넋을 나가게 만들었고, 랭커 타고 방방 뛰어 다니며 킹콩 모멘트를 직접 체현하는 보바 펫의 모습은 다이묘 답지 않게 실로 우스웠다. 그리고 뭐? 사이보그? 그래, 아까 이야기했듯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사이보그 인간들도 있을 수 있지. 근데 그럼 활약할 기회를 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 사격도 지지리 못하면서 눈에 기계 안구는 왜 달았대? 그거 그냥 무거운 장식이야? 

시즌 초반부 박타 탱크에 들어가 낮잠 때리며 터스켄 부족과의 눈물겨운 공감을 끌어내는 교차 편집도 시청 진도를 더디게 만드는 부분. 터스켄 약탈자들을 인간적인 레벨로 묘사하려했던 시도 자체는 썩 <스타워즈>식 올바르게 된 PC 같아 싫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재밌다기에는 너무 질질 끌었어. 그냥 한 에피소드 정도로 마무리 했어야 하는데 거의 시즌 초반 두세 에피소드 모두를 몽땅 거기에 투자하고 있었으니... 근데 말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인데, 한 행성의 다이묘 치고는 보안이 너무 겅중겅중한 거 아냐? 박타 들어가 있는데 갑자기 크르산탄이 등장해 다 헤집어 놓음. 페넥 쉔드도 그렇고 가모리안 병사들도 그렇고 너네 대체 뭐하냐...

존나 쿨한 악당의 귀환인 줄 알았는데, 결국엔 또 밑도 끝도 없이 정의의 화신으로 등극하는 보바 펫의 엉뚱생뚱한 귀환기. 심지어 중간에는 만달로리안에게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기 까지 한다. 이건 뭐 거의 <만달로리안> 시즌 2.5... 자기 이름을 내건 드라마에서 분량이 실종되는 아픔이란... 아, 그리고 이것도 좀 다른 이야기인데 그로구의 귀환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기껏 <만달로리안> 시즌 2 말미에서 예쁜 이별을 시켜주었건만, 여기서 바로 이렇게 다시 조우하면 그 감동이 휘발 되잖아. 그리고 루크가 생각보다 더 오래나왔던 것도 좀 깼음. 물론 시리즈의 팬으로서 루크 너무 좋고 반갑지. 근데 <만달로리안> 시즌 2 피날레의 비중 정도가 딱 촌철살인 아니었을까 싶음. 지금은 너무 많이 나와 오히려 그 신비감이 다 깨지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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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22/04/07 15:24 # 답글

    차라리 보바펫이 아닌 오리지널 캐릭터였더라면 위화감이라도 줄였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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