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9 10:58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극장전 (신작)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성공가도를 달리게된 이후, 디즈니 이외 여러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각자가 갖고 있던 IP들을 신중히 재검토 해보기 시작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MCU의 성공을 그냥 지켜만 볼 순 없었던 거지. 바로 그 때문에, 한동안의 할리우드에서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구축 대잔치가 열렸다. DCEU는 물론이고 다크 유니버스, 트랜스포머 유니버스 등등... 사실상 1편과 2편, 3편 등으로 이어지던 기존 시리즈 구성으로 가는 게 훨씬 더 합당 했을 프랜차이즈들도 죄다 시네마틱 유니버스 구축한답시고 뻘짓 했던 시기였지. 나 역시도 그런 흐름을 부정적으로 보던 1인이었는데, 그렇게 보수적이던 나조차도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잘 어울린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해리 포터> 시리즈.

<해리 포터> 시리즈는 해리 포터라는 주인공의 일대기로 8부작이나 해먹었지만, 그럼에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생각해보자, 해리 포터는 나이 먹고 졸업했지만 마법 세계는 여전히 남아있잖아. 할 이야기는 셀 수도 없었다. 워너브라더스는 해리와 그 친구들이 입학하기 이전의 호그와트를 그릴 수도 있었다. 다른 학생이나 교사들을 주인공으로 말이다. 아니면 해그리드가 소개했던 신비한 동물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고, 이 마법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정치 드라마로 풀 수도 있었지. 아니면 가장 인기있고 유명세 있던 캐릭터들 중 하나인 덤블도어의 옛 이야기를 풀어 그가 옛 애인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설명하는 것 역시 가능했다. 그도 아니라면,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내내 영국의 마법 세계만을 보여주었으니 다른 국가들로 배경을 옮겨 그 국가만의 마법 세계를 묘사하는 것 역시 정말로 재미있는 관광거리가 되었을 것. 이것 봐라, 해리 포터라는 주인공이 빠져도 이미 매력적인 세계가 버티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시네마틱 유니버스 엮기에 좋은 상황인 거잖아. 하지만 우리의 워너브라더스가 선택한 방법은 매우 매우 매우 단순했다. 그냥 저것들을 하나의 솥단지에 몽땅 때려붓는 것. 

관객으로서나 팬으로서의 조언이 아니고, 그냥 기업가적 마인드로 보았을 때도 저게 훨씬 이득 아닌가? 한 영화 시리즈에서는 신비한 동물들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스핀오프 시리즈에서는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비극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기에 몇 개 더 추가해 다른 영화 시리즈들에서는 각각 타국 마법 세계 관광이나 퀴디치 스포츠 영화 만들었어도 되는 거잖아. 그럼 어찌되었든 기업인 워너브라더스 입장에서도 돈 훨씬 더 많이 벌고 좋았던 거잖아. 근데 왜 그걸 죄다 한 영화에 때려넣는 거냐고. 전편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그 지점이 이번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에서는 더 심해졌다. 이젠 더 이상 신비한 동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서 있지 못한 것. 그러다보니 당연하게도 뉴트 스캐맨더 역시 주인공 역할을 제대로 못 해냄. 

그린델왈드 캐릭터는 뻔하고 이제 재미없다. 물론 매즈 미켈슨으로 바뀐 얼굴은 너무나 섹시하고 멋지다. 그러나 그건 그냥 배우의 매력인 거고, 이 새끼는 결국 또 히틀러 패러디했던 볼드모트의 또다른 변주일 뿐이었던 것. 볼드모트도 그랬잖아, 머글이랑 혼혈들 싹 다 족치고 순혈들만의 세상을 만들자고. 왜? 순혈 마법사들이 훨씬 더 우월하니까! 이거 누가 봐도 히틀러 마인드잖아. 물론 배경이 영국을 위시한 유럽이란 점에서 그 번안은 효용성 있다. 히틀러와 나치당 싸잡아 영화적 악당으로 만드는 전통은 <스타워즈> 역시도 했던 거니까. 고로 볼드모트 역시 그럴 수 있음. 하지만 이미 볼드모트라는 불세출의 악당이 존재했고 또 사그라든 상황에서, 단순히 그 변주로만 보이는 그린델왈드란 악당은 동기와 행동에 카리스마가 떨어져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너무 전형적이라고...

여기에 덤블도어와의 애정 전선 역시 그냥 웃기다. 둘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애초에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 거 신경 쓰이지도 않고, 오히려 원작자가 공인한 설정이니 무분별한 PC적 리메이크라는 꼬리표조차 붙일 수 없는 상황. 어쩌면 더 애틋하고 비극적일 수도 있는 설정이지, 한때의 연인이 지금은 적으로 돌아선 상황이잖아. 아, 이 얼마나 낭만적인 상황인가. 하지만 영화는 그도 잘 풀어내지 못한다. 일단 그 둘의 케미스트리가 돋보이는 장면이 전혀 없다. 그나마 그 뉘앙스를 조금 넣은 장면이 클라이막스 속 둘의 결투일텐데, 일단 결투가 재미없을 뿐더러 서로의 심장을 겨누고 있단 그 설정이 너무 유치해 조금 웃겼다. 뭔가 그 옛날 귀여니 소설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덤블도어 캐릭터도 너무 웃겨, 아무리 불같이 사랑했던 사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뭔 목숨을 건 맹세까지 했냐. 이래서 젊은 커플들 커플 문신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괜히 자기가 수습 못하고 애제자 뉴트한테 짬 때리기까지 하잖냐. 

설정 구멍이 엄청 많다. 그냥 개연성과 현실성 없는 순간들의 집합체. 애초에 뉴트 일행은 독일에 왜 갔냐? 아, 덤블도어의 메시지 전하려고? "쉬운 일보단 옳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라는 뻔한 멘트 때문에? 그거 그냥 부엉이로 보냈어도 되는 거잖아. 이 설정은 그저 뉴트 일행이 독일에 있어야 이후 사건들에 엮이기 쉬워지니 넣은 설정일 뿐인 것이다. 그냥 설정을 위한 설정. 여기에 허탈감마저 느껴지는 마법 세계의 선거 제도 역시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멍해진다. <블랙팬서> 보면서도 그런 말 했었지, 뭔 놈의 최첨단 국가가 주먹다짐으로 왕 선출 하냐고. 애초 21세기에 군주제로 굴러가고 있는 첨단 국가란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게다가 그 왕을 정치 능력이나 하다못해 핏줄로 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데려다가 막고라 시키는 걸로 뽑음. 그거 보면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블랙팬서>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에 비하면 선너였던 것이다. 이쪽 마법 세계는 들짐승이 머리 조아리는 것으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를 가졌다. 기린이 신성한 동물이라고는 하나, 그럼 애초에 선거 운동은 왜 했던 거? 왜 지지자들이 나와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 이름들을 연호했던 건데? 아니, 애초에 선거운동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백날 천날 선거운동하고 홍보해봤자 기린이 절하면 게임 끝인데. 그리고 지금 같은 선출 방식이었으면 현실 선관위 같은 집단이 기린 직접 관리 했어야지. 울타리도 짓고 출산할 때도 전문 의료진이 붙어 케어했어야지. 근데 지금은 그냥 야생에서 살고 있는 거 냅두고 있음. ......이게 말이 되냐?

1편과 2편 내내 이후의 활약을 암시하던 크레덴스는 갑자기 짐짝이 되어 급 처리 전개를 맞고, 덤블도어가 특별히 신경 써 리크루트한 코왈스키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멤버가 되었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겠다. 아, 무엇보다 제목에도 명시되어 있는 그 덤블도어의 비밀이란 게 대체 뭐지? 그가 게이라는 거? 그린델왈드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거? 아니면 크레덴스가 덤블도어 가문의 사람이라는 거? 셋 중 무엇이든 하나도 안 궁금했고, 또 하나도 안 놀라웠다. 이걸 가지고 제목에 까지 쓰기에는 좀...

전반적으로 망한 시리즈의 후속작이라고 본다. 물론 전작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급까지는 아니다. 그 영화는 정말이지 형편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정리도 안 되서 어지러웠기 때문에... 그 영화에 비하면 조금 더 나아진 속편인 것은 사실이나, 애초 전편 부터가 영 글러먹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 나아졌다고 해봤자 거기서 거기임. 이 확장성 풍부했던 시리즈를 이렇게 말아먹는 것도 진짜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워너는 유명 IP 소유하고 직접 망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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