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7 10:50

불도저에 탄 소녀 극장전 (신작)


세상 모두가, 스무살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거칠거칠하다 못해 사포 같기도 한 혜영에게 닥친 일들은 한국 사회 끝자락에서 달랑달랑 간신히 매달려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겪을 수 있을만한 것들이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붕 떠버린 보험금, 누군가의 보증이 깃든 부동산 사태, 가진 자들의 갑질, 가족 간의 불화 등등. 물론 이 모든 게 일순간 한 번에 다 찾아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근데 그 드물고 또 드문 상황이 혜영에게는 직격탄으로 쏟아진다. 

나쁘게 말하면 전형적인 한국 독립 영화 같다. 이제는 장르명도 하나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사회 비판적 요소로 주인공을 사디스틱하게 괴롭히는 장르. 강철중 말마따나, 한국 독립 영화계에서 이런 영화들만 발굴해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바퀴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전형적이고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장점도 있지. 비슷한 영화들이 대부분 다 그랬듯, <불도저를 탄 소녀> 역시 어쨌거나 강렬한 영화적 힘을 가졌다. 특히 주인공 혜영을 연기한 김혜윤은 주인공으로서 영화를 강력하게 이끈다. 그외 다른 조연배우들 역시 연기가 좋지만, 어쩔 수 없게도 결국엔 김혜윤의 얼굴로 기억에 남을 영화인 것. 

이렇듯 영화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시종일관 강렬한 어투로 사회적 불합리에 대한 주인공의 분노를 관객들에게 체화 시켜낸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내게 잘 맞는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의 질적 면모와는 별개로 그냥 내 취향에 엄청 반하는 주인공이었거든. 최근 <킹 리차드> 보면서 느꼈던 감상과도 비슷하다. 일단, 주인공이 너무 예의가 없다. 물론 어느정도 정상 참작 되는 부분 역시 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세상이 그녀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그런 태도로 세상을 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하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도저처럼 무조건 돌격하기만 하는 그 주인공의 태도와 행실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삶의 태도였다 할지라도, 내게는 전혀 공감이 안 되었던 것이다. 공감은 커녕, 주인공으로서 관객들에게 응당 얻었어야 했던 최소한의 호감 마저도 얻어내지 못한 혜영을 두고 내가 어찌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었을까. 

구 체제에 저항하는 태도로 말미암아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오히려 좋아!"를 외쳤던 뉴 아메리칸 시네마 기조의 영화들처럼, <불도저에 탄 소녀> 역시 그런 태도로 만들어진 작품일 수 있다. 근데 어찌되었든 앞서 말한대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뻔한 건 사실이잖아. 전형적인 소재와 상투적인 태도인 것 역시 맞잖아. 여기에 그냥 불편함까지 마구 느껴야 되는 영화이다 보니,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그리 잘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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