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30 16:23

공기살인 극장전 (신작)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다 말하면 불경한 소리겠지만, <공기살인>의 개봉 즈음 TV 뉴스에서 10여년 전 실제 가습기 살균제 살인 사건으로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거의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너무 미안했다. TV 뉴스 보다가 뜬금없이 미안한 감정을 느껴 고개를 떨궜다고 말한다면 누가 믿어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너무 죄스러웠다. 내가 만들고, 내가 판 가습기 살균제도 아니었건만 그냥 그걸 잊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너무 개탄스럽더라고. 

다만 영화는 영화로써 평가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영화 <공기살인>의 가장 큰 적은 기시감이다. 실제 사건에 기반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시감이 든단 소리가 아니다. 영화는 이미 그 기획 단계에서 이러한 기시감을 충분히 극복할 기회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미 실제로 벌어졌던 이야기인 만큼 그 전개와 과정 자체를 마구 바꿔낼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연출이나 캐스팅 등 다른 부분들로 그러한 단점들을 조금이나마 덮을 수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공기살인>은 완전히 익숙한 방향으로만 그 길을 뚫어냈다. 

엄밀히 따지면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에 있다. 이제 2022년이나 됐으면, 솔직히 충무로는 김상경한테 진실 파헤치는 거 금지 시켜야 한다. 눈물 흘리며 소리 지르고 호소하는 거 금지 때려야 한다고. 그뿐이랴? 서영희 역시 비탄에 잠기기 금지! 비극의 주인공 되어 무력감 느끼는 거 금지라고! 여기에 이선빈이라고 무사할까. 이선빈 역시 당찬 표정으로 눈 부라리는 거 이제 금지 당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반전 요소를 통해 영화의 가장 감정적인 부분을 효과적으로 따내는 인물이긴 했어도, 윤경호 역시 어찌 보면 좀 뻔한 인물이었다. 요즘의 윤경호 정말 눈 여겨 봐야하는 배우인 거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반전 요소가 더 안 먹힌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말이 안 되는 것 역시 너무 많다. 아니,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 외국계 거대 기업 수뇌부에 그토록 양심적이고 행동주의적인 인물이 사보타주 하며 숨어 있었다고? 이거 완전 다크 나이트잖아... 묵묵히 대의를 위해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그 자체로 굉장히 멋진 장르적 인물인 것은 사실이나, 10여년 전의 현실 속 한국에 그런 인물이 있었을 리가. 갑자기 <베테랑> 결말부에서 느꼈던 허탈감이 떠오르네. 장르적으로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막말로 <베테랑> 결말 보며 현실적으로 납득했을 한국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그게 현실이었으면 구속 수사는 커녕 바로 조태오 무혐의 처분 테크였을 걸? 오히려 황정민의 서도철이 징계먹고 퇴직 당했겠지, 뭐...

어쨌거나 10여년 전 실제 비극의 슬픔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는 아쉬움이 더 짙게 남는 편. 그래도 이 영화의 개봉을 통해 물 먹는 하마가 옥시 제품이었다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검색해보고 또 알게 되어 앞으로는 사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기는 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영향들이, 이러한 영화들의 긍정적 효과들 중 하나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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