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4 14:43

스타워즈 - 비전스 SE01 연속극

북미에 비해 한참을 미루다 이제서야 공개한 디즈니 코리아의 실태에 1차 분노. 
그런데 기껏 기다렸던 시리즈가 별 재미 없게 느껴져 여기에 또 2차 분노 세컨드 임팩트. 



1. <결투>


사실상 이 옴니버스 시리즈의 시즌 1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완급 조절과 순서 배치 대실패인 거지. 제일 볼만한 게 가장 먼저 나와버리면 이후 작품들은 죄다 어떡하란 말이냐. 

재패니메이션이란 정체성을 극명히 드러내면서도, 애초 조지 루카스가 이런 것들에 꽂혀 <스타워즈> 만든 거 아니였냐고 반문하는 에피소드. 광선검과 포스가 다뤄져서 그렇지, 사실상 일본풍이 가장 강한 에피소드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화 자체가 먹으로 그린 듯한 동양풍 끝판왕이고, 이야기도 <7인의 사무라이>를 기본 베이스로 갖췄다. 단편이다 보니 인물들 간의 세세한 설정이나 전사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그럼에도 짧은 포맷에 맞춰 간결한 이야기와 액션으로 승부를 봤음. 

상술 했듯이 극중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한지라 그들에 대해 완벽하게 알게 되었다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럼에도 정황상 주인공인 로닌은 시스 사냥꾼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건 제다이 사냥꾼이었음에도 기계 수족 때문에 포스 사용 자체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그리버스 장군과는 달리, 이쪽 주인공은 포스도 자유자재로 쓰고 또 꽤 강해보인다는 거. 시스 잡고 다니는 거 보니 최소 현직 시스는 아닌 것 같은데, 또 폭력적인 방식으로 시스 사냥 하는 것이나 사용하는 광선검의 빛깔이 붉은색인 것 보면 최소 현직 제다이 역시 아닌 듯. 하지만 포스 유저라는 점에서 또 일반적인 현상금 사냥꾼은 아닌 것 같고...

정황상 제다이와 시스 사이의 회색 지대에 스스로를 위치시킨 포스 유저 정도 아닐까 생각 해본다. 물론 <라스트 제다이> 엔딩의 유지를 받들었다면 누구나 갈고 닦아 쓸 수 있는 게 또 포스일 테니 그럼 할 말 없긴 하지만, 딱히 이 에피소드가 거기까지 나아갔을 거란 생각은 안 들고. 전직 시스였으나 그 생활에 환멸을 느껴 탈덕하고 옛 동료들 잡으러 다니는 정도가 아닐까 싶네. 사실 이 에피소드의 시점이 정확히 언제쯤인지 알 수 없어 더 헷갈리는 것 같음. 물론 이 시리즈 자체가 거의 정사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시즌 1 통틀어서 가장 괜찮은 작품. 다만 클라이막스의 대결은 좀 더 낭낭하게 챙겨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2. <타투인 랩소디>


시도는 좋았다. 디즈니의 손에 의해 <스타워즈> 은하계가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부터, <만달로리안>이나 <북 오프 보바 펫> 등의 TV 시리즈들을 통해 그 외연이 확장되고 있지 않나. 그러니까 이 은하계를 배경으로 할 뿐, 액션 어드벤쳐로써가 아닌 다른 장르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더 만들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 특히 음악 영화적 특성은 <스타워즈>에 나름 잘 맞을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타투인의 자바 나와바리 안에서 버스킹하는 악사들만 모아도 꽤 그럴 듯한 그림 나올 법 하잖나. 

그런 의미에서 <타투인 랩소디>는 흥미롭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서 음악 영화적 모멘트를 갖추고 있다는 점. 여기에 보바 펫이나 자바 더 헛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도 그 얼굴을 비춘다는 것 역시 그랬다. 근데...... 그게 너무 재패니메이션 감수성이야... 곧 죽을 놈들이 동료와 꿈을 위하는 거랍시고 처형장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벌인다는 게... 엄청난 실력과 무대 매너로 관객들을 휘어잡아 끝내는 그 목숨까지 부지한다는 게... 이거 너무 열혈물 같잖아... 최근 언젠가 밝혔지만 나 이런 거에 알러지 생긴지 꽤 됐어... 이젠 더 이상 이런 거 못 보겠단 말야...



3. <쌍둥이>


쌍둥이 캐릭터를 통해 <스타워즈> 특유의 가족적 딜레마를 다뤘다는 점과 화려한 작화 만큼은 인정. 하지만 명실공히 이 시즌 1 통틀어 최악의 에피소드였다. 일단 내가 재패니메이션 감수성에 더 이상 동화되지 못하고 있단 상황 때문이기도 한데, 이 에피소드가 시즌 1의 다른 에피소드들 중 제일 재패니메이션스러웠음. 누나를 살리기 위해 열혈과도 같은 태도로 돌진한다는 점에서부터...

설정도 존나 웃긴다. 일단 이 에피소드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정사여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광선검 출력을 극한으로 올린 뒤 돌진하면 스타 디스트로이어도 두동강 낼 수 있다는 발칙한 상상. 발칙하지만 유쾌하지는 않은 그 상상. 이건 홀도 제독의 특수 기술이었던 하이퍼 스페이스 카미카제 보다 더한 기술이잖아... 이럴 거면 애초 루크도 각성해서 죽음의 별 일도양단 가능했던 거 아님? 이것이야말로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간절하면 이루어진다'에 가까운 감수성이네. 아니, 그 전에 일단 너네 우주 공간에 떠있는 우주선 바깥에 어떻게 서 있는 거냐? 너네 숨 안 쉬냐? 물론 스페이스 오페라 블록버스터였던 만큼, 그동안의 시리즈들에서도 이와 비스무리한 묘사들을 아주 안 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노골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오프닝에서 스타 디스트로이어 첫 등장 시키는 연출만 딱 좋았던 것 같음. 



4. <마을 신부>


이쯤 되면 이제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조금 이따 이야기할 일곱번째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특유의 작화와 분위기로 조금은 선방한 편이거든. 하지만 <마을 신부>는? 이것도 어김없이 <7인의 사무라이> 플롯이잖아. 문제를 겪고 있는 토착민들이 외부에서 온 무사들의 도움을 받아 평화를 되찾는다는. 물론 <스타워즈>가 구로사와 아키라에 많은 빚을 지고 시작한 시리즈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같은 시리즈의 같은 시즌 내에서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가 세 번이나 반복되는 거냐고. 게다가 이거 최근 <만달로리안> 시즌 2에서도 다 했던 거잖아. 

진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형적인 이야기로 흘러간다. 여기에 결국 핵심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신혼 부부의 묘사 역시 어이가 없음. 결국 약탈자들 다 때려잡고 정의구현하는 이야기로 갈 건데 대체 왜 신혼 부부 캐릭터들은 꺼내온 거? 전체 마을을 위해 희생하는 그 신부의 고운 마음씨 자랑 한 번 해보려고? 자랑감이기는 커녕 존나 큰 그림 못 보는 고리타분한 인물처럼 밖에 안 보이던데. 너가 거기 인질로 잡혀가면 너네 마을 사람들이 과연 안녕하겠냐? 그거 빌미로 약탈자들이 끊임없이 수탈하려 들 텐데. 아, 혁명 마렵다. 



5. <아홉번째 제다이>


차라리 솔직한 편이다. 이야기 전개고 나발이고 그냥 깔쌈한 광선검 결투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제작진의 의기투합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야기는 여전히 뻔하고, 등장하는 캐릭터들 역시 모두 다 전형적이라 재미없지만 그럼에도 주로의 간지가 다행히 그 아쉬움들을 일정부분 달래준다. 여기에 노인네 마냥 설정된 드로이드 묘사도 웃김. 딱 그 부분 한정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같더라. 

단편 임을 감안해도 제다이인 줄 알았던 인물들이 알고보니 시스였다는 설정을 좀 더 깊게 파보면 어땠을까 싶긴 함. 지금은 의심의 칼이 주로에게만 향해있어 조금 아쉽다. 모여든 인물들 중 누가 진짜 제다이고 누가 시스인지 마피아 게임 한 판 돌렸으면 시즌 내에서도 나름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거서 같다. 



6. <T0-B1>


이름은 오비완 케노비에 대한 오마주지만, 이야기 전개와 설정은 영락없는 철완 아톰. 에피소드의 귀여운 태도와 동글동글한 작화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클라이막스에서 펼쳐지는 강렬한 액션까지. 하지만 여전히 이야기가 존나 존나 존나 뻔하다는 점은 큰 약점. 물론! 이야기 뻔해도 괜찮지. 지금까지의 <스타워즈> 영화들이 뭐 언제는 이야기가 새롭고 좋아서 즐길 수 있었던 건가? 뻔한 내용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끗발나는 재미로 그냥 조진 거지. 그 부분에서 <T0-B1>은 아쉽기만 하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이런 건 다 좋았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이 시리즈가 어쩔 수 없게도 소품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한 것 같았음. 



7. <장로>


<결투> 다음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에피소드. 플롯 자체는 <결투>, <마을 신부>와 비슷해 그닥 새롭진 못하지만, 특유의 작화와 간지나는 액션으로 중화시킨 편. 특히 길게 나오는 건 아님에도 악역으로 등장하는 노인의 카리스마가 너무 좋다. 물론 이거 역시 재패니메이션에서 흔한 묘사지. 하지만 특유의 그 귀기 어린 미친 노인 컨셉이 너무 잘 어울려 좋았음. 

<결투> 에피소드의 로닌과 마찬가지로, 뭐하고 다니는 새끼일까가 가장 궁금해진다. 붉은 빛의 광선검을 쓴다는 것과 빠와 번개를 자유자재로 발사한다는 점, 여기에 두 눈이 모두 노랗다는 것까지 영락없는 시스인 건 맞음. 근데 시스로 그 나이까지 먹었으면 분명 제자랑 같이 다닐 텐데 혼자 다니는 게 특이함. 여기에 그 시골 행성엔 왜 갔대? 가서 뭐 대단한 일 벌인 것도 아니고 그냥 야생동물 죽이면서 제다이 기다리고 있었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인 물을 넘어 결국 썩어버린 물이라 둘의 규율 등의 시스 전통들이 이젠 다 하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진 상태 아닐까- 하는. 시스나 제다이, 제국이나 공화국 이제 그딴 거 다 상관없고 그냥 강한 상대와 맞붙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상황. 아마 조우한 게 제다이가 아닌 시스였어도 한 판 뜨자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결투>의 로닌과 한 번 맞붙여보고 싶네. 물론 여기서는 상대 제다이의 정갈한 실력으로 썰렸지만. 

그나저나 실력과는 별개로 타진 그 새끼 또라이 아님? 누가 봐도 제자를 우주선으로 보내고 본인이 산 타야할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8. <롭과 오초>


<스타워즈> 특유의 가족 드라마로 귀결되는 작품. <주토피아>도 아니고, 그나마 주인공이 토끼 꼴을 하고 있단 점에서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할 수도 있겠다. <스타워즈> 정도의 세계관이면 그렇게 생겨먹은 외계종족이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말그대로 전형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보고 있는 것 같단 착각도 드니 말이다. 

에피소드의 줄거리나 액션성 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설정이 자꾸 신경쓰일 수 밖에 없다. 누가봐도 일본일 수 밖에 없는 행성이 제국에 의해 식민지배 당하고 있는 몰골이라니, 이게 안 웃기냐고. 오초는 제국 덕분에 우리가 발전하고 잘 살 수 있는 것이라며 식민지배를 옹호하고, 이에 그의 아버지는 이대로 가다간 전쟁의 희생양이 될 뿐이라며 맞선다. 그러니까 그 그림이 더 웃김. 그놈의 대 일본제국이 조선에 했던 짓 그냥 미러링한 거잖아. 이 새끼들이 진정으로 식민지배 당하는 그 설움을 알까 싶었음. 물론 나도 100년 전 사람은 아니니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이 식민지배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니 그 꼴이 너무 웃기더라. 제작진들은 과연 거기까지 생각하고 이 에피소드를 만든 것일까? 



9. <아카키리> 


<결투>, <마을 신부>, <장로> 등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모티프를 끌어들인 작품들이었다면 <아카키리>는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공주와 전사, 거기에 덜 떨어진 두 명이 포함된 파티가 쿠데타를 통한 왕정복권을 위해 긴 여정길에 오른다는 전개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 그에 이어지는 고행길 이미지도 얼핏 보면 비슷. 아, 주인공의 이름이 츠바키인 것은 <츠바키 산주로> 탓이겠지. 

흐물흐물 날림체의 작화가 매력있지만, 너무 클리프행어 식의 결말로 끝이나 조금 허탈 하기도 한 작품. 돌이켜 보면 딱히 재밌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스타워즈> 스킨 씌운 뒤 마음대로 해보겠다!는 스튜디오의 패기는 마음에 든다. 이같은 소품 시리즈들을 통해 이 세계관의 외연이 조금씩 확장될 수 있다면, 팬으로서 그건 즐겁고도 감사한 일이지. 하지만 그 의미를 떠나 일단 작품 자체가 좀 재밌었으면... 그리고 애초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라는 구성을 택했으면 좀 더 활개쳐도 괜찮잖아? 너무 기존 <스타워즈>와 그 모티프가 되어준 몇몇 일본 영화들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좀 안쓰러우면서도 짜증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쌍둥이> 에피소드처럼 마구잡이로 활개치는 건 금지. 시즌 2에서도 이러면 죽여버립니다. 

덧글

  • 잠본이 2022/05/24 15:45 # 답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애니매트릭스나 고담 나이트 정도의 기획이었군요.
  • CINEKOON 2022/05/30 14:35 #

    근데 전반적인 시리즈의 평균값이 낮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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