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특수효과의 역사는 물론이고 영화사 그 자체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거대한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게 있어서 정말이지 소중하다 못해 기쁜 영화. 근데 정작 영화는 존나 호러.
물론 원작자인 마이클 클라이튼의 공이 엄청나게 큰 거지만, 어쨌거나 호박 안에 갇힌 모기를 통해 공룡들을 부활 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진짜 언제 봐도 개쩐다. 지금 와서야 그게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지만 알게 뭐야.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는 그럴 듯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덕목으로 여겨지니까. 소위 대단한 구라.
영화 연출적으로는 정보를 존나 잘 주는 영화라는 점이 세련됐다. 오프닝에서 랩터와 티렉스 언급을 한 뒤 이후 등장시키는 전개라든가, 초반 15분 만에 주인공의 기계치 + 애들 혐오 속성을 다 소개해둔다든가, 이후 나올 딜로포사우루스 같은 비교적 조연에 가까운 공룡들조차도 가이드의 목소리를 통해 바로바로 설명. 그리고 무엇보다 미스터 DNA를 통해 관객들 앉혀두고 실제 프레젠테이션 때려버린 패기가 대박이다.
서스펜스를 정말 알차게 쓴다는 느낌도 있다.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더 많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연출 방식도 물론 뛰어나고. 그림자와 컵 안의 물결로 스릴을 만드는 방식 같은 것들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이젠 무덤덤한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나무에 매달린 지프차 핸들 건드려 바퀴 방향 돌려놓는 것 만으로도 진짜 알차게 서스펜스 만들고 있더라. 공간 창출 능력이 뛰어난 축구 선수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해야할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들에서 조차 알차게 뭔가를 해내고 있으니...
영화사에 있어 CGI 기술의 발전과 그에 대한 대중들의 격렬한 반응으로 기억되는 영화일텐데, 그게 무색하게도 실제 촬영 분량의 아우라도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아, 물론 CGI 개쩌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어느 분야든 기술력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결국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조금 퇴색되어 보이고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잖아. 그 점에서 <쥬라기 공원>의 CGI 대단하게 획기적이면서도 동시에 지금 기준으로는 조금 불안해 보이는데, 그 CGI 촬영과 함께 병행한 애니메트로닉스 기술이 그래서 더 안정적으로 보여 좋다. 스탠 윈스턴 주도 하에 실제로 만든 티렉스 대가리로 지프차를 한낱 도시락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도적. 여기에 별 거 아닌 걸 뛰어넘어 그 시절엔 당연했던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로케이션 촬영 역시 너무 좋다. 오늘날엔 배우들 다 데리고 해외 로케이션 잘 안 가잖아. 그냥 뒤에 그린 스크린 둘러 찍어버리니까... 근데 씨바 이 시절엔 풀 CGI 촬영이 어디 있어, 그냥 다 데리고 가서 폭포 앞에 놓고 찍는 거지. 근데 그 온전한 실재감이 마음에 안정을 너무 준다. 그러니까 요즘 영화들 그린 스크린 좀 적당히 둘렀으면...
영화는 결국 인류의 오만함에 대한 대자연의 분노로 요약된다. 오만함. 새끼 공룡들이 알을 깨고 나올 때마다 그 앞에 서 있겠다는 말. 그리고 가까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공룡들을 자신의 입으로 응원 하겠다는 그 말. 해먼드의 그 말은 정말로 자기가 주인 행세하겠단 소리고, 자기가 진짜 공룡들의 부모라고 생각한단 소리다. 이게 얼마나 오만한 소리냐. 살아 숨쉬고 스스로 생각하는 생명이라 한들 뭐 어때, 내 돈으로 내가 만든 내돈내산인데 까짓거 못할게 뭐 있겠어-라는 마인드. 이후 이러한 맥락은 얕게나마 속편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오프닝에서 반복된다. 재멸종 위기에 처한 공룡들을 살려야한단 여론 앞에서 국회의원이 말했잖아, 슬픈 일이지만 한 기업의 재산으로써 만들어진 존재들이기에 함부로 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와 더불어 말콤의 말대로, 해먼드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암컷으로만 이루어져 있던 공룡들이 번식을 위해 성별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하필 중요한 투어 날에 당도한 폭풍의 존재 같은 기후적 요인, 여기에 섬의 시스템을 모두 셧다운 시켜버린 네드리란 인간의 욕망까지. 말콤이 언급한 나비 효과 이론을 토대로 보자면 네드리의 텅빈 주머니 사정 역시 결과론적으로는 쥬라기 공원의 거대한 비극을 일으킨 작은 날갯짓이었을 것이다. 자연주의는 물론이고 자본주의에 대한 코멘트까지 하고 있는 영화로써는 이 역시 무시하지 못할 디테일.
캐릭터들도 다 좋은데, 꿈을 이뤄버린 오덕의 순간에 거기서 미쳐버린 샘 닐 표정 연기가 대박. 아마 그 자신이 아이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싫어했던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브라키오사우루스랑 교감할 때 보면 진짜 천진난만 순진무구한 아이 표정 같거든. 여기에 로라 던도 좋고 우리들의 영원한 머더퍼커 형님 사무엘 L 잭슨도 좋다. 하지만 어째 다시 보니 가장 개쩌는 캐릭터는 제프 골드브럼의 이안 말콤 캐릭터였던 것 같음. 왜 속편에서 이 양반을 주인공 시켜줬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스필버그는 그냥 올라운더형 감독이라는 것만 다시금 탈탈 증명한 영화. 시네마틱한 연출이면 연출, 효율적인 이야기 전개면 전개, 장르적인 스펙터클과 서스펜스, 여기에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던 CGI 기술의 응용과 실제 촬영분과의 결합까지. 암시도 잘하고 엇박도 개 잘 타고. 지금의 스필버그도 참으로 대단하지만, 이 당시의 스필버그는 어리기 까지 했으니 그 패기를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뱀발 - 네드리의 책상 위 모니터에 붙어 있던 사진은 다름 아닌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아이머의 것. 기업 사보타주의 전형일 뿐이었지만 자기 딴에는 스스로를 프로메테우스 정도 되는 존재로 합리화 시켰던 모양이다. 오펜하이머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니. 그런데 핵무기를 만들고 나서 오펜하이머가 내뱉은 자조적 멘트 역시 워낙 유명하지 않나.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그 부분에서도 결과론적으론 맞는 얘기였음. 네드리의 욕망 섞인 뻘짓 때문에 해먼드도 망하고 그랜트 박사 일행도 죽을 뻔했으니... <폴른 킹덤> 엔딩까지 보면 전세계가 다 망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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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본이 2022/05/31 08:49 # 답글
rumic71 2022/05/31 12:59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