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30 17:24

쥬라기 공원 - 잃어버린 세계, 1997 대여점 (구작)


전편도 부인할 수 없는 '모험 영화'이긴 했지만, 그래도 속편이 그 뉘앙스를 좀 더 짙게 가져간다. 외딴 곳에 고립된 주인공들, 날벌레를 곁들인 열대 정글의 초록빛깔, 그리고 스테이지가 바뀔 때마다 그 공략도 조금씩 달라지는 전개까지. 여기에 사방팔방에서 모여드는 크고 작은 공룡들의 로얄럼블 팀플레이가 메인 콘텐츠. 

<쥬라기 공원>이 영화 역사에 있어 그 누구도 쉽게 무시하지 못할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후인지라,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그 속편인 <잃어버린 세계>에 박한 감이 좀 있는 것 같다. 인터뷰 좀 찾아보니 심지어는 스필버그 마저도 되게 반성하고 후회한다는 듯한 태도로 말하던데, 속편 찍을 때 자기 자신이 좀 거만 했던 것 같다고. 하지만 난 그거 그냥 그 할배만의 겸손이라고 본다. 솔직히 1편이 너무 쇼킹해서 그랬지 2편도 꽤 괜찮은 영화였거든. 난 2편 좋아하는 편. 

하지만 2편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전혀 커버칠 수 없는, 그리고 커버칠 용의도 안 생기는 독보적 미친 고생물학자 세라 하딩의 등장. 아프리카에서 웬만한 맹수들 다 연구해봤다며 오만하게 구는데, 그런 거 다 떠나서 이 여자는 진짜 그냥 미친 사람이다. 자연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텐데, 스테고사우루스 새끼한테 다가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순전히 자기 욕심에 머리까지 쓰다듬어주려고 했다. 그걸 지켜보던 말콤의 말에 의하면 뭐든 꼭 만져봐야 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고... 근데 그 때문에 결국 생태계에 작게나마 영향을 줬음은 물론이고 동료들까지 다 죽일 뻔 했잖아.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직후 담배 태우려던 닉을 꼽주면서 세라가 하는 말이 더 가관. "담배는 안 돼, 공룡은 수 마일 밖에서도 맡아. 우린 기록을 하러 왔지, 영향을 미쳐선 안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로남불의 끝판왕.

공간적 배경이 이슬라 누블라에서 이슬라 소르나로 바뀐 것은 영화의 장르에 뿐만 아니라 메시지적 측면에도 일조 한다. 물론 전편과 속편 둘 다 자본으로 자연을 살 수 있단 오만한 생각을 꼬집는 영화들이지. 1편이 무엇이든 죽은 것도 되살려 낼 수 있다는,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었다면 적어도 1편의 그 사태 덕분에 생각이란 걸 하기는 좀 했는지 2편 속 악당들은 신에 도전하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뭐겠어, 뭐든 돈으로 사겠다는 그 심보지. 그 점에서 인간의 오만함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개장 준비 중인 쥬라기 공원이 있었던 이슬라 누블라 배경의 1편은 일종의 동물원에 대한 코멘트이기도 하지 않았나. 살아 숨쉬는 자연의 존재들을 그저 눈요깃거리로 창살 안에 넣어둔다-라는 불편한 이미지. 하지만 대자연이 그냥 그대로 펼쳐져있는 이슬라 소르나 배경의 2편은 그보다는 사냥과 밀렵에 대한 이미지를 먼저 펼쳐 놓는다. 주인공들 눈 앞에 펼쳐진 생생한 동물 학대의 현장... 지프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거대한 공룡들을 양몰이 하듯 이리저리 몰아넣는 이미지 자체의 영화적 쾌감은 멋지지만, 그 장면의 텍스트적 내용은 존나 거북하고 불편하다. 예컨대 불편한 아름다움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근데 그런 점과는 별개로 기껏 잡은 위험한 공룡들을 지키는 게 겨우 걸쇠 하나 걸린 케이지라니 안전불감증은 천조국 특공대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유리창의 실금 갈라지는 소리와 풀숲 구부러지는 모습만으로 사람 간 졸이게 만드는 스필버그의 장인적 솜씨 역시도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덤도 많이 줌. 다 먹었으나 아직 더 들어갈 자리 남은 거 아니냐고 하며 다시 앉혀 고봉밥을 건네주는 스필버그 알배의 인심. 이제 다 끝났나 싶었는데 랩터 한 무리로 소소한 액션 기깔나게 또 뺀다. 물론 이러나 저러나 철봉체조 장면은 안 넣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1편 다시 보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제프 골드브럼이 꽤 멋지다. 멋지다는 생각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배우였는데 이번 2편 오랜만에 다시 보며 처음으로 반했다. 그래도 명색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인데도 존나 시니컬 하다는 점, 열정이나 열혈 감성 없이 하기 싫은데 살기 위해 억지로 한다는 뉘앙스가 강한 점 등이 매력 포인트. 아, 조금 딴 소리지만 피터 스토메어 나왔을 때 진심 빵터짐. 아, 이 아저씨 여기 나왔었구나. 

태어나서 처음 극장 관람한 영화가 이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난생 처음 극장이란 곳엘 가봤다. 뭐, 어린 남자애들은 로봇이나 공룡 둘 중 하나면 껌뻑 죽지. 맞는데, 하지만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좁은 편이었을 당시 전주 시내 극장의 한 상영관 안에서, 나는 마지막 장면 속 프테라노돈의 날갯짓을 보며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빠진 건 프테라노돈을 넘어 영화 그 자체였음. 그렇게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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