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4 14:30

쥬라기 월드, 2015 대여점 (구작)


여러모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를 떠올리게 했던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 전설로 남은 20세기 오리지널 작품의 유지를 받들어 제작된 21세기 신작이라는 점. 더욱 더 발전된 CGI와 특수효과로 돌아온 작품이란 게 더 그렇다. 문제는, CGI와 특수효과가 발전하는 동안 이야기와 그 전개는 단 1%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는 것. <깨어난 포스>가 <새로운 희망>의 리패키지 버전이었듯이, <쥬라기 월드> 또한 <쥬라기 공원>의 리패키지로만 남는다. 이렇게 발전없이 그 명맥만 유지 하다가는 진짜 공룡 꼴나서 멸종하는 거 아니냐고. 

일단 재밌는 것. <쥬라기 공원>과 존 해먼드는 해내지 못했던 공원의 개장과 정상화. 그거 보는 재미는 하나 있다. 무슨 돌고래 쑈 보듯이 모사사우루스 먹방 구경하는 관객들 모습도, 어린 새끼 공룡들 직접 만지고 심지어는 타고 다니기까지 하는 방문객들 모습도 어쨌거나 참 재미있다. 존 해먼드가 꿈꾸던 게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테지. 근데 여기서 영화는 이상한 페이소스까지 흘린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물'에서 '공룡'으로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이게 우리가 잘 아는 동물원과 다른 게 뭔가. 딴에는 좁을 수조에 갇혀 인간들이 던져주는 먹이만 사냥 없이 무의식적으로 먹을 뿐인 모사사우루스의 모습에서, 그리고 새끼 공룡들이 스트레스 받을 게 자명해보이는 페팅 쥬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인 동물학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건 애초 쥬라기 공원의 컨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쥬라기 공원은 <쥬라기 공원> 시점에서 망했잖아. 그것도 갇혀 있던 공룡들이 우리 부수고 나와 깽판 치는 것으로. <쥬라기 월드>의 중후반부 역시 마찬가지지만, 성공한 테마파크의 모습을 전반부 내내 전시한다는 점에서 그 불편함 역시 <쥬라기 공원>의 그것에 비해 오래 상기된다. 차라리 영화가 이쪽으로 메시지를 더 옮겨 갔으면 어땠을까도 생각 해본다. 

시리즈의 전통이라면 전통인 것일까, 이번 영화 역시 주인공들 중 둘을 어린 아이로 설정해두었다. 근데 얘네들은 왜 넣은 건지가 끝까지 의문. 1편의 남매도 소리 지르고 바보 짓하는 게 좀 짜증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애들이었고 또 그런 바보 짓들이 이야기 전개에는 장르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기에 일견 이해가 되었다. 바보 짓을 해야 위험한 사건이 따라올 수 있으니까. 허나 <쥬라기 월드>의 두 형제는 그냥 딴짓만 줄창하고 있다. 형이랍시고 있는 놈은 눈치도 없는지 어린 동생놈이 진작 눈치챈 부모의 임박한 이혼도 전혀 모르고 있던 뉘앙스. 무엇보다 여자친구 있으면서 쥬라기 월드 와서는 공룡 보다 또래 여자애들한테 더 눈길 많이 줌. 그야말로 껄떡쇠 캐릭터인데 이놈의 이런 면모가 전체 이야기 전개에 딱히 영향을 준 게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어린 아이인걸 감안하더라도 둘째의 태도 또한 웃긴다. 공룡 봐서 신나 죽겠다던 놈이 갑자기 부모 이혼 생각하며 눈물 짓고, 또 모노레일 내려서는 울다가 또 공룡 볼 생각에 들 떠 있음. 아, 원래 애기들은 이런 건가... 그렇다해도 이 둘째의 감정선은 철저히 향후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만 셋팅되어 있다. 각본가와 연출가의 딸리는 설득력이 여기에서 드러나는 거고.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 역시 그랬었지만, 이제는 리얼 키메라의 영역으로 간다. 단순히 유전자 안정화를 위해 다른 동물들의 DNA를 섞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쥬라기 월드>는 그저 멋져 보여야 한단 이유 하나만으로 대놓고 키메라 제작. 이걸로 좀 더 심도 깊은 유전학적, 그리고 윤리적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영화는 이걸 그냥 스펙터클과 반전의 재료로만 굴린다. 와, 카멜레온처럼 보호색 띄며 의태하는 공룡이라니 쩐다! 와, 랩터로 잡으려 했는데 정작 그 랩터와 소통해 편까지 먹고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공룡이라니 쩐다! 딱 이 정도만 생각하고 아이디어 굴린 것 같음. 물론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제일 나쁜 건 따로 있다. 공룡들의 지나친 의인화. 나는 그게 너무 느끼하고 싫더라. 물론 오토바이 탄 주인공 옆으로 랩터들이 달려나가는 모습? 개간지. 근데 그 이미지 빼면 뭐가 남냐? 기존 오리지널 3부작이 제시하던 대자연의 경이와 공포는 훈련을 뛰어넘어 심지어는 교감해 부릴 수 있다는 이 영화의 새 아이디어 때문에 고스란히 날아갔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가 오래 지속되어 온 만큼, 제작진 입장에서야 그럴듯해 보이는 새 활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웬만한 포유 동물들 다 사육사들이 훈련시킬 수 있는데 공룡은 왜 안 돼? 이런 태도로 임할 수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했어야지. 나로서도 오웬이 랩터들 훈련 시키고 부리는 장면 자체는 괜찮았다고. 근데 결말부에서 보란듯이 팀 먹고 싸우면 어떡해... 공동의 적을 함께 물리치고 나서는 쿨하게 헤어진다-라는 렉시와 블루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포켓몬스터 그 자체. 맞다, 나는 렉시야말로 1편의 컨셉 그대로를 이어 갔어야 한다고 본다. 그냥 존나 무서운 대자연의 들짐승. 근데 영화는 그걸 피카츄 굴리듯 하고 있음. 

이거 극장 개봉 했을 당시 봤을 때는 그냥 저냥 재밌게 관람 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좋았던 것보다 나빴던 게 더 많네. 역시 그 당시에는 추억의 힘 같은 게 작용했던 것일까? 박살나야 제맛인 공원 한 복판에서 렉시의 포효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그외 나머지를 조목조목 따져보면 실망이 더 많았다. 


뱀발 - 매티 카다로플이라는 배우. 요 몇년 새에 <기묘한 이야기>나 <프리 가이> 등을 통해 자주 보고 있는 친구인데 존나 무기력해보이는 연기로는 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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