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4 15:13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 극장전 (신작)


이전작들 리뷰는 여기여기,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누가 봐도 성공할 만한 타이밍에 모두의 힘을 모아 쏜 원기옥인데, 시전자 능력이 딸린 느낌. 그래서 속이 텅 비어버린 뻥과자 같다. 


열려라, 스포 천국!


우선 좋은 점. 아마 대부분의 팬들이 다 똑같은 말 하지 않겠나 싶은데, 왕년의 3인방이 배우 교체 없이 그대로 돌아온 점은 두 팔 벌려 대환영이라 하겠다. 이번엔 성공한 말콤의 시선끌기 작전도 좋았고, 게다가 기존 시리즈의 팬들이 원했던 앨런-엘리 커플링도 이어줬어. 물론 그게 설득력있는 전개였다기 보다는 그냥 팬들 지지 얻어내려고 해낸 의무방어전 같은 느낌이 더 강하긴 하지만 뭐 어쨌든. 그리고 정말이지 놀랍게도, 이게 이 영화의 유일한 좋은 점이다. 

전작인 <폴른 킹덤>은 결말에 이르러 급진적이고도 과격한 태도를 취하는 작품이었다. 시리즈 내내 좁아터진 섬에서만 거닐던 고대의 존재들을, 우리 인간들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의 세계로 풀어내버린 것. 현실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점들이 분명 존재하는 결말이었겠지만 속편 입장에서야 나쁠 것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거의 30년간 지속되어 온 오래된 시리즈에서, 이제는 조금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는 설정이니까. 여기에 새로운 주제의식까지 들여올 수 있었겠지, 인간이 책임져야 할 생태계 파괴의 참혹함 같은 것들. 하지만 <도미니언>은 전작의 결말 따위엔 전혀 천착하지 않겠단 태도를 들이댄다. 왜냐고? 어차피 영화 후반부는 또 몽땅 외딴 정글에서만 펼쳐지거든. 이럴 거면 <폴른 킹덤> 결말 왜 그렇게 냈음? <스타워즈> 시퀄 3부작 만큼은 아니지만, 이쯤 되니 이 시리즈 역시 전체적인 로드 맵이 없었던 게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든다. 아닌 게 아니라 <도미니언>이 <폴른 킹덤>의 결말을 이용해 먹는 건 딱 한 군데 정도이기 때문이다. 몰타 시내를 가로지르는 공룡vs오웬 추격전. 솔직히 말해 그거 하나 보여주고 싶어서 저질렀던 게 <폴른 킹덤>의 결말 아니었나하는 생각까지 듦. 공룡 암시장 따위야 뭐 허울 뿐인 설정이고. 

이전에 그런 이야길 한 적이 있다. 대체 뭘 보고 콜린 트래보로우를 <쥬라기 월드>의 감독 자리에 앉힌 건지 모르겠다고. 비난의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궁금했다. <쥬라기 월드> 이전 그는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 같은 소규모의 독립 영화만 찍어본 위인이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작품 솔직히 난 그저 그랬거든. 근데 유니버설은 대체 뭘 보고 이런 빅 프로젝트에 그의 이름을 거론했냔 말이야. 이 질문은 <쥬라기 월드>를 보고 난 직후에도 풀리지 않았다. 그 영화야 뭐 그냥 무난한 블록버스터였으니까. 감독의 인장이 여실히,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이번 <도미니언>까지 보고나니 그 미스테리의 수렁은 더욱 더 깊어진다. 이번엔 비난의 의미도 좀 섞여 들어가는 것 같다. 유니버설은 대체 이 감독의 어느 면모에 혹했던 거지? <도미니언>은 그야말로 연출력의 부재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됐다. 

각본의 탓도 물론 있을 것인데, 연출력의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 부분은 영화의 전개와 그 설득력에 있다. 이 영화의 각본은 그야말로 '그렇게 해야 되서 이렇게 된' 이야기들의 총집산이다. 메이지는 그저 누군가에게 붙잡혀야만 오웬과 클레어를 모험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에 붙잡히는 존재가 되었다. 아니, 근데 얘를 왜 납치해야 하는데? <폴른 킹덤>에서는 그저 죽은 딸을 너무도 사랑했던 부자가 그녀를 복제해 메이지를 만든 것으로 묘사될 뿐이었다. 허나 그렇게만 되면 메이지를 납치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각본진은 속편 들어 그 이유를 억지로 만들었다. 아, 알고보니 할아버지가 자기 딸을 복제해 손녀로 키운 게 아니고, 과학자였던 그 죽은 딸이 혼자 자식을 낳고 싶어 스스로를 복제 했던 거임! 그리고 복제해 딸로 기른 그 또다른 자신이 장수할 수 있게 유전자 조작도 했던 거임! 그래서 우 박사는 향후 프로젝트를 위해 그녀 안의 유전자 정보가 필요했던 거임! ......이게 지금 말이 되냐? 미혼모로서 혼자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싶었던 거면 정자 기증 받으면 되잖아... 아니면 입양을 하든지... 왜 과학자가 굳이 스스로를 복제해 자식으로 만들어 키움? 이거야말로 전편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옵션을 속편들어 억지로 갖다붙여낸 설정이 아니냐고. 

이 뿐만이 아니다. 블루는 대체 어떻게 스스로를 복제해 낳은 건데? 아, 너네 또 무슨 DNA 덕 봤다 하려 그러지? 그래야 스스로를 복제한 메이지 엄마와 메이지의 모녀 관계가 블루-베타의 모녀 관계와 대비를 이루니까? 염병하네, 진짜. 바이오신이 베타를 납치하는 이유도 존나 웃긴다. 아니, 솔직히 아직도 왜 납치한 건지 이해가 안 됨. 그냥 오웬과 블루 사이의 텐션을 위해 이것 역시 갖다 붙인 설정일 뿐. 여기에 그 인신매매 납치범들이 몰타로 향했다는 정보를 오웬과 클레어가 얻게 된 경위 역시 존나 웃김. 전작에서 함께했던 동료 프랭클린이 하필 일 하게 된 곳이 관련 업무청이라고? 근데 프랭클린은 그 정보 왜 알려줌? "알고만 있고 절대 작전을 방해하지 마요!"라며 엄포 놓는데 솔직히 자기도 알았을 거다, 오웬과 클레어가 그 작전 방해할 거란 걸... 

하여튼 이런 게 자꾸 반복된다. 지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번 편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카일라란 파일럿 캐릭터도 진짜 웃긴다. 생판 남의 일에 갑자기 목숨까지 걸며 끼어든 이유가...? 그냥 말 통하는 미국인이라서? 동향 사람이라 도와주는 거임? 진짜로 이런 게 엄청 많다. 게다가 말콤은 왜 그 바이오신에서 일하고 있는 건데? 아, 내부에서 주인공들을 도와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니까. 근데 그걸 왜 말콤 시키냐고... 이런 쪽의 기업에서 절대 일 안 할 만한 사람이잖아... 순전히 이야기를 굴러가게끔 만들기 위해 억지로 갖다붙인 설정들의 대향연. 씨바 진짜 답도 없다. 

공룡들 역시 웃긴다. 여전히 지나치게 의인화 되어 포켓몬처럼 구는 것도 싫은데, 심지어 렉시는 그 분량마저 털렸다. 이쯤 되면 그냥 전투력 측정기. 기가노토사우루스한테 당해 죽은 줄 알았는데 빛이 눈을 비추자 냉큼 다시 살아나 덤벼들 때의 연출은 정말이지 유치함의 정석.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에서 기절한 줄 알았던 정형돈이 손에 힘주고 다시 일어나 족발당수 날리던 거랑 이게 대체 뭐가 다르냐. 말 나온 김에 기가노토사우루스도 정말 웃긴다. 개봉 전 엠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인 콜린 트래보로우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도미니언>의 주 악역인 기가노토사우루스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도 같은 공룡이라고. 그저 세상이 불타길 바라는 공룡이라고. 근데 영화 다 보고 나면 그 인터뷰 왜 한 건지 아리송해지는 걸 넘어 빡치는 수준이다. 일단 분량 자체도 많지 않거니와, 딱히 조커 같은 면모가 강조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함께 등장한 테리지노사우루스가 더 무섭던데. 근데 그건 그냥 내가 조류 무서워해서 그런 것 같고. 

인간측 악역인 도지슨은 비록 배우가 교체 되었으나 1편에서 네드리에게 면도 크림 통을 건네던 그 작자. 하지만 생긴 것과 하는 짓은 애플의 팀 쿡. 할리우드는 왜 이리도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을 미워하는 것일까? 물론 그런 묘사가 마냥 싫다는 건 아니다. 나도 스티브 잡스랑 팀 쿡에 대해 별 감정 없으니까. 까려면 깔 수 있지. 헌데 좀 심하단 느낌 들지 않아? 최근 10여년 간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 중 악역을 스티브 잡스나 팀 쿡, 일론 머스크 등에서 모티프를 삼아 만든 게 꽤 많던데. 그 정도로 존나 악역같이 신선한 이미지인가? 솔직히 그것도 잘 모르겠지 싶다. 

쐐기골 하나 더 넣을까? 다른 건 몰라도 기술의 발전이 있는데 CGI는 좋겠지-라는 생각. 나는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심지어 1993년의 1편이 훨씬 더 좋은 느낌이다. 물론 절대적인 기술력의 수치로만 보면 당연히 이번 영화가 훨씬 더 좋겠지. 근데 분위기를 보라고. 비오는 밤에 전기 울타리를 넘어 온 티렉스의 압도적 위엄. 그런 게 이번 영화엔 없었다. 오히려 너무 밝은 대낮에만 튀어나오니 그 신비감이 더 죽는 느낌.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왕년의 3인방까지 어렵게 모셨는데 이런 꼴일 줄은...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번 영화까지 보고 나니 조 존스톤의 3편은 그래도 꽤 준수한 작품이었구나-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유니버설은 자기네들이 가진 자산의 진짜 가치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분노의 질주>에 이어 <쥬라기 월드>까지, 이렇게 되니 워너 보다 얘네가 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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