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3 13:06

브로커 극장전 (신작)


도쿄에 살던 어느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 일당은 누군가가 버린 것을 주워서 키워 낸다. 다만 도쿄에 살던 그 어느 가족은 그 주워낸 아이를 애초부터 가족처럼 여기고 함께 살아냈던 것에 반해, <브로커>의 주인공 일당은 영화 제목 답게 인신매매범으로서 그 인연을 처음 시작한다. 심지어는 그 아기를 버린 친모 마저도 인신매매단의 든든한 동료가 된 상황. 과연 세계적인 거장 히로카즈는 이 범죄자들을 데리고 어디까지 가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는 역시나 일종의 대안가족 이야기이고, 결국 또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어찌보면 뻔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다행인 건 내가 언제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혹한다는 것이다. 소형 승합차를 타고 이곳 저곳을 누비는 가족 이야기란 점에서 <미스 리틀 선샤인>을, 그리고 전혀 다른 정반대의 장르이긴 하지만 피 한 방울 안 섞인 인물들이 이합집산 하다가 하나의 가족을 이루게 된다는 점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떠올리게끔 하기도 한다. 

물론 논의할 수 있는 여러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들의 표면적 목적을 통해 인신매매의 무서움과 그 범죄 안에 던져지고 갇혀버린 자들에 대한 동정 역시 가능해진다. 여기에 일단 아기를 팔게끔 해서라도 그들을 현행범으로 체포 하고야 말겠다는 형사 캐릭터들을 통해서는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 되는가에 대한 논의 또한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꽂힌 것은 그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보육원이라는 시설은 실존하고, 또 그 안에 자리 잡은 입양 시스템 역시도 현실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고아가 되어 입양만 기다리는 아이들을 좌판에서 사고 파는 물건 쯤으로 여기고 말하는 태도가 불편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그런 발언들이 오롯이 어른들의 것이기만 했다면 또 모르겠다. 극중 해진이는 스스로가 이젠 입양되기 어려운 나이대에 진입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난 어색한 어른들에게도 자신을 입양해 달라며 부탁한다. 아-, 차라리 그 때 해진이가 떼를 썼다면 어땠을까. 아이처럼 울고 불며 땡깡을 부렸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해진이는 그러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정중한 부탁처럼 들린다. 그리고 끝내 거절 당하자, 해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른들의 차에 숨어드는 것 뿐이었다. 

해진이는 첫등장부터 자신의 꿈이 손흥민 같은 프리미어 리거라는 사실을 자랑처럼 말하고 다닌다. 그런 해진이의 손과 발엔 언제나 축구공이 붙어있다. 그랬던 아이가, 그렇게 타고 싶다 말하던 대관람차에 올라서는 그 높이의 무서움에 굳어버린다. 상현은 저멀리 축구장이 보이니 일어나서 좀 봐보라 말하지만 끝끝내 해진은 그 축구장을 보지 못한다. 그렇게 해진이는 현재 처한 현실에 갇혀 저멀리 놓인 자신의 꿈을 바라보지 못한다. 거기다 상현에게 그리 말하기까지 해, 대관람차 보다 세차장이 더 재밌고 좋았다고. 놀이동산 보다 세차장이 더 좋은 아이. 따지고 보면 해진이가 좋아했던 것은 자동 세차장의 청소 솔과 세제 섞인 물줄기가 아니라, 아마 그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지고 볶고 웃으며 놀았던 순간일 것이다. 아이가 세차장에 가고 싶다고, 도착하면 깨워달라고 말하는 게 나는 너무 슬펐다. 

아쉬운 점은 분명 존재한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이 처음으로 찍게된 한국 영화였기 때문에, 아마 여러 배우들이 역으로 러브 콜을 보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래서인지 영화 중간 중간 곳곳에 짧은 분량의 단역 임에도 그에 비해 꽤 무겁게 느껴지는 배우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게 썩 효과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갑자기 몰입이 깨진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가장 아쉬운 건 역시나 결말. 사실상 별다른 설명을 더 덧붙일 것이 없는, 그야말로 용두사미의 전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숱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는 내게 눈물을 글썽거리게 만드는 영화로 남았다. 어렵게 모인 다섯명의 가족이 좁아 터진 포토부스에 들어가 함께 사진을 찍고, 얄궂은 상품이 걸린 다트 게임을 함께 하고 있는 그 순간들. 명백한 가짜인데 확실한 진짜 같아서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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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22/06/24 13:06 # 답글

    해진이 처음엔 그냥 개그캐릭터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되게 중요하더군요. 어른들 마음을 여는 열쇠노릇도 하고.
    세차장 그장면은 평소에 이러다 문열면 어떻게 될까 싶었는데 진짜로 해버려서 격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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