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작 리뷰를 하며 그 레퍼런스가 되어줬을 영화들을 꼽아본 적이 있다. 초능력을 소유한 주인공을 숨겨주고 가족처럼 대해주는 사람들의 시골 집 풍경은 <맨 오브 스틸>을, 먹을 것에 탐닉하는 초능력 소녀의 이미지는 <기묘한 이야기>를, 병원 안에 갇혀 염동력 쓰는 묘사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를, 생체병기로 개조된 존재가 연구소를 탈출하는 모습은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을 각각 떠올리게 한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만에 당도한 2편. 정말이지 놀랍도록, 2편은 1편의 모든 요소들을 답습한다. 심지어는 레퍼런스로 떠올렸던 그 영화들까지도. 이쯤 되니 감독이 그 영화들 정말로 인상 깊게 봤단 게 사실로 입증되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는 전편과 똑같이 서사에 있어 모든 것을 포기한다. 어디에선가 보고 들은 설정들을 마감 직전 세일 품목 담듯이 헐레벌떡 가져와 쓰는 것 뿐, 정리는 하나도 안 되어 있다. 한마디로 설정들을 그냥 늘어뜨려 놓는 영화. 이야기가 신선한지 아닌지를 떠나 일단 영화의 핵심이 되는 전개는 연구소를 탈출한 초능력 소녀의 활약기여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영화는 정작 그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딴소리들을 늘어놓는다. 갑자기 스케일을 넓혀 외국의 어느 교회에서 벌어진 대학살과 그 현장에 놓인 조현을 묘사하며 갑자기 욕쟁이 콤비 개그를 펼치더니, 또 다른 부분에서는 전작의 백 총괄과 이종석의 장이라는 신규 캐릭터를 붙여 큰 그림을 그리려 한다. 그러다 또 갑자기 용두라는 제주도 깡패 집단 보스가 등장해 으름장을 놓고... 이게 지금 하나의 이야기로 점차 엮어들어가고 있기는 하냐? 막말로 동물병원 아저씨는 왜 나온 거야? 그냥 주인공 치료해주려고?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결국 다 '죽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럼 왜 죽어야 되는데?-라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 이유도 그저 '주인공 소녀를 각성시키기 위해서'일 뿐. 또다른 주인공인 오누이 캐릭터들은 그 등장부터 나중에 죽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그 노골성에 그저 탄복하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캐릭터들이 재밌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소녀 역시도 재미 한 태기가 없음. 그냥 다 어디서 봤던 것들을 조각보 마냥 힘겹게 기운 것 뿐이다. 아니, 오누이가 살고 있는 시골 집 디자인 누가 했냐. 이런 2층 집을 한국 시골에서 본 적이 있는가? 이건 누가 봐도 캔자스 어느 곳에 있을 것만 같은 미국 집이잖아. 게다가 그 앞에 놓인 트럭은 또 전형적인 미국 느낌의 픽업 트럭. 한국의 시골이면 포터 트럭 있는 게 국룰 아니냐고.
그러니까, 수퍼히어로 장르라는 다분히 외국적 장르를 끌어다 썼음에도 로컬라이징에 있어 전혀 고민을 안 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로컬라이징 잘된 한국의 장르 영화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언급해왔다. 물론 그 전 우리나라에도 조폭 코미디 등의 장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 장르의 본류는 유럽의 마피아 영화와 미국의 갱스터 영화 아니겠는가. 그것을 <범죄와의 전쟁>은 썩 한국적인 이미지로 잘 옮겨왔고, 게다가 나쁜 의미로 한국적인 이른바 혈연/지연/학연 등의 인맥 관련 문제를 핵심 소재로 끌어다 쓰기까지 했다. 그 자체로 엄청 한국적이잖아. 생각해보자, 만약 갱스터 장르 옮겨왔다면서 한국의 조폭 두목이 돈 꼴레오네 마냥 가슴팍에 장미꽃 꽂고 있으면 그게 안 어색 하겠냐고. 특정 장르를 한국으로 들여올 때 최소한의 로컬라이징을 생각하는 것은 이처럼 당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마녀> 시리즈는 엄청나게 게으르다. 그냥 그것들을 그대로 다 가져오기만 했다. 여기에 인물들은 죽기 위해 등장했을 뿐이고, 싸우기 위해 싸울 뿐이다. 제주도에서 왜 미행을 아우디 타고 해... 소나타나 아반떼 타고 했어야지... 그리고 미행이라면서 왜 그리 가깝게 붙어 운전하는 거고... 이건 그냥 싸우자는 거잖아... 게다가 오그라드는 장면과 설정들도 속출한다. 전투 이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다 솟구치는 분노로 타일 깨버리는 장면, 이거 너무 90년대스러운 거 아냐? 그리고 실험체들을 가둬두고 있던 연구소 이름이 ARK? 방주? 진짜 중2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네...
다른 건 몰라도 내내 말이 없던 주인공 소녀가 첫 대사하는 순간 만큼은 연출 잘 해줬어야 했던 거 아니냐고. 다른 것도 아니고 내내 대사가 없던! 주인공 소녀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며! 입밖으로 말을 내뱉는 장면인데! 영화는 그걸 그냥 자동차 뒷좌석에서 먹방 보는 걸로 홀랑 낭비해버렸다. 이 정도면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아니라 그냥 각본 정말 대충 쓰고 연출 대충 한 거 아니냐고...
보는내내 한숨 몇 번을 내쉬고, 또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지금 3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1편과 2편도 이런 완성도인데, 여기서 3편을 어떻게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관성에 의해 3편도 어찌되었든 보게 되겠지만, 1편과 2편을 포함해 해당 시리즈를 재관람하게 될 일은 아마도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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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mic71 2022/06/23 12:47 # 답글
잠본이 2022/06/24 13:01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