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9 14:29

R2B : Return to Base, 2012 대여점 (구작)


<탑 건><탑 건 - 매버릭>에 이어 찾아본 영화. 그러다보니 애초부터 불리한 포지션. 아마 영화 스스로도 나에게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볼멘소리 하지 않았을까. 

충무로의 블록버스터들이 그 옛날 할리우드의 흥행작들 노골적으로 따라하는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R2B>는 좀 심했지 싶다. 물론 그 고충은 이해한다. 전투기를 소재로 한 현대적인 액션 영화는 한국에 전무한 상황이었고, 그러다보니 레퍼런스로 1986년의 <탑 건>을 안 볼래야 안 볼 수는 없었을 것. 때문에 영화가 다루고 있는 전투기 조종석 내부의 상황이나 그걸 담아내는 방식, 전투기들 사이의 도그 파이트 묘사 등등은 <탑 건>과 유사하게 느껴지더라도 어느 정도는 관대히 봐줄 수가 있다. 어라? 전투기 내부는 어떻게 찍지? 일단 <탑 건> 보고 참고해보자!-라는 뉘앙스였을 테니까. 

하지만 인물들과 그 이야기의 결까지 비스무리한 건 좀 선 넘은 거 아니냐? 기술적으로 전투기를 어떻게 묘사하고 또 담아낼지 등은 <탑 건> 참고해도 봐준다니까? 근데 내용 전개까지 유사하게 가져가버리면 어쩌란 말이냐. 정지훈이 연기한 정태훈은 톰 크루즈의 매버릭과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동시에 상관 말은 개무시하며 독단적인 행동을 일삼는 주인공 캐릭터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깐족거리지는 않는 매버릭과 적극적으로 깐족거리는 정태훈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어쨌거나 군인 임에도 상관들의 명령은 듣지도 않으며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하다 실수를 저지르는 주인공 캐릭터이다 보니 영 정이 안 간다. 

여기에 주인공과 연애 전선을 형성하는 유세영은 정비사로, 비록 <탑 건>의 샬럿처럼 군 전문가 포지션은 아니지만 하여튼 간에 군 관계자였다는 점으로 유사성을 띈다. 공군 정비사인 줄 모르고 주인공이 먼저 들이댔다는 점이 <탑 건>과 가장 비슷한 점. 게다가 유준상이 연기한 이철희 소령은 주인공과 계급 차가 있을 뿐이지 그 자체로 그냥 매버릭 vs 아이스맨 구조 재탕이고... 굳이 굳이 변명을 하자면 독단적인 열혈 타입 주인공 vs 냉철하고 이성적인 라이벌의 구도는 일본 만화에서도 많이 반복되어 왔던 것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치만 <탑 건>의 몇몇 핵심 이미지들을 재탕하고 있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잖아. 항공 점퍼 입고 선글라스까지 낀채 오토바이를 타는 주인공의 모습... 게다가 그 옆 저 멀리에서는 비행체가 날아간다는 공통점까지. 이뿐만이 아니라, 막상 영화를 보면 <탑 건> 안 떠올리기가 더 어려울 지경으로 비슷한 게 널렸다. 다 떠나서 일단 밀리터리 항공 영화인데 청춘 드라마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그 배분 자체가 너무 <탑 건>스럽잖아. 

<탑 건>과의 비교를 차치해도 영화가 이상한 건 매한가지다. 밀리터리라고 해봤자 군대 2년여 다녀온 게 전부인 군 문외한 나조차도 보면서 이상함을 느낀 부분들이 꽤 많았다. 아니, 귀순기로 위장한 북한의 전투기가 휴전선을 넘어와 아군을 마구 공격해대는데 왜 사령부는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는 거야? 아, 지금 거기서 격추시키면 민간인들의 피해가 예상되니까? 근데 거기서 격추 못해 결국 위험해진 건 서울이었음. 적기가 서울 영공으로 진입해 전광판과 63빌딩, 여러대의 주차된 자동차들을 모조리 다 박살냈는데 그럼 이건 낫냐? 상식적으로 서울 영공 진입 하기 전 휴전선 부근에서 얼른 격추 시키는 게 맞지 않음? 이건 뭐... 교전 중 탈출해 북한 땅으로 내려앉은 파일럿의 묘사도 좀 웃긴다. 그 에피소드는 뭔가 시간대가 다 안 맞는 듯한 느낌. 거기 떨어진 게 언젠데 왜 이제와 북한군에게 쫓기고 있는 거야... 이건 대본의 리듬과 편집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김성수가 연기한 박대서 캐릭터가 은근히 더 웃기더라. 영화 나름대로는 존나 세련된 충무로 블록버스터 느낌 내고 싶었을 텐데, 박대서 분량은 모조리 다 90년대 드라마 느낌이라 거기서 오는 갭이 뻘하게 웃겼음. <탑 건>과의 유사성 빼고 보면 어쨌거나 돈 많이 들인 2010년대의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박대서 대사랑 관련 에피소드들은 다 90년대 주말 드라마 감성. 왠지 모르겠지만 그게 너무 웃겨서 영화 보는내내 풉풉 거렸다. 

덧글

  • 젠카 2022/06/29 16:36 # 답글

    한국엔 <빨간 마후라>가 있습니...
  • 두얼굴의 표범해표 2022/07/04 00:06 # 답글

    군대에서 이 영화 처음 봤는데 어우...
  • 정호찬 2022/07/04 21:26 # 답글

    정태훈이 민간인 위에서 엔진 끄고 지랄한 거 매버릭이 보면 미친놈이라고 때려죽였을 겁니다.

    민가로 추락하는 전투기 방향 바꿀려고 자기 살 기회 버리고 끝까지 조종간 잡고 죽은 조종사들이 있었던 공군에서 저따위 자군 능멸 영화나 지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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