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어질 결심>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기념 및 개봉 전 예습을 위해 시작한 박찬욱 연대기. 단편도 많이 찍은 양반이지만 그냥 장편 기준으로만 순서 맞춰 보기로 한다. 그리고 <리틀 드러머 걸> 같은 드라마의 경우도 이미 리뷰 썼으니 제외.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감독이라 불릴 만한 박찬욱의 기념비적인 데뷔작. 근데 정작 감독은 스스로의 흑역사라 공언 해버린 문제작이기도 하다. 뭐,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아직 영글지 못했을 때의 자신이 만들었던 초기 작품에 대해 일종의 수줍음을 느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잖아. 그런 점에서 이해해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달은... 해가 꾸는 꿈>을 그냥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고 넘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괴상한 작품. 그렇다. 마냥 못 만든 망작이라고 하기 보다는, 도대체가 그 저의와 작의를 파악하기가 힘든 '괴작'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풋내난다는 느낌을 넘어 영화 전체가 괴팍하고 괴이하다. 일단 범죄 세계에 밤을 담근 한 남자와 그를 사모하는 한 여자의 이뤄질래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려 했다는 것은 대강 파악이 되는데... 차라리 단순하게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으련만. 영화는 여기에 송승환이 연기한 하영이란 인물을 더해내 삼각관계를 펼쳐나간다. 그런데 이 하영이란 인물도 이미 수미라는 인물과 뭔가가 있었던 것처럼 묘사됨. 여기에 주인공인 무훈을 쫓는 범죄조직은 여전히 이야기의 뒷배로 작용하고 있고, 은주의 모델 데뷔라는 설정까지 끼어들어온다. 무훈과 흔주, 하영 사이 삼각 관계를 통해 중첩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란 테마를 소재로 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영화가 진정으로 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이야기 전개가 아니다. 바로 영화의 테크닉. 지금의 박찬욱은 어떤 감독인가. 취향 확실한 연출계의 테크니션 아니었던가. 그런데 데뷔작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영화적 기술력은 가히 천인공노할 수준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편집은 어딘가 몇몇 쇼트들이 누락된 듯 엉성하고, 후시녹음으로 진행된 음향 상태는 1992년이라는 제작 시기를 고려하더라도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미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모두 덜 영근 상태였던 박찬욱의 모습. 2022년 현재 기준으로는 그게 너무 어색해서 영화가 뻘쭘하게 느껴진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영화의 내용이나 테크닉 모두를 아울러 그냥 극장판으로 만든 뮤직비디오 같다. 게다가 주인공은 또 이승철이야. 그래서 더 뮤직비디오 같음. 막말로 거의 2시간에 달하는 영화인데 그냥 싸그리 자르고 재편집해 3분짜리 뮤직비디오 버전으로 만들어도 이해 안 되거나 아쉬운 부분이 없을 것만 같다. 이런 작품으로 데뷔하고도 지금까지 버텨낸 박찬욱의 존버 정신에 찬사를 보내야할지, 위로를 보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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