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5 13:33

공동경비구역 JSA, 2000 대여점 (구작)


박찬욱 필모그래피 깨기 3탄. 

숱한 인터뷰들을 통해 박찬욱이 뭐라 말했건, 하여튼 세번째 영화를 만들며 사활을 걸지 않기란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데뷔작은 물론이고 그 후속작까지 흥행 실패를 해버렸으니. 그래서였을까, <공동경비구역 JSA>는 어떤 면에서 박찬욱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박찬욱은 박찬욱이라서, 중간 중간 아주 짧게나마 B급스러운 부분들이 튀어나오기는 함. 그래도 영화 전체가 B급보다는 이제 A급 만듦새처럼 보인다는 게 포인트. 

가장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피어오른 가장 한국적인 감정. 민족간 대치 상황에서 초코파이 마냥 돋아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걸 굉장히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원래 사람이라는 게 먼저 자기를 도와준 상대에 호감을 느끼는 법 아니겠는가. 그 은혜를 못 느끼고 후안무치하는 태도는 인면수심이지. 말 그대로, 인간의 얼굴을 한 짐승의 마음인 거. 그러니까 인면수심이라는 말을 만든 옛 사람들도 인간된 도리라는 게 무언지 잘 알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었으면 나도 또 손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그 점에서 남측과 북측 인물들의 관계가 첫 설정되는 순간이 재미있다. 우습게도 남측의 이수혁이 북측의 오경필 & 정우진 콤비를 만난 계기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음. 그것은 GPS와 지도도 제대로 읽지 못한채 어쩌다보니 북한 땅까지 넘어와버린 얼빠진 지휘관의 오인으로 시작되어, 이수혁 개인의 급하디 급한 개인적 용무가 이어받고, 그와중 밟은 남북한 대립의 상징인 지뢰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높으신 분들로 부터 시작된 실수의 연결고리가 한국전쟁을 상징하는 지뢰로 귀결된다는, 그 날카로우면서도 자연스레 키득거리게 되는 자연스런 흐름이 좋다. 그리고 그걸 결국 해결하는 건 곤란한 상황에 빠진 사람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는 북측 군인들의 인간된 도리.

지금 와서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남측과 북측의 인물들이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이념에 대한 언급을 농담으로라도 꼭 했을 것만 같다. 아무래도 그게 직접적이되 좀 더 효과적일 순 있으니까. 하지만 20세기 극후반에 제작된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한 군인들이 식어빠진 이념 대립 따위 하지 않는다. 다만 김광석과 초코파이를 논할 뿐. 근데 그게 더 강렬하고 비극적이다. 겨우 몇 미터를 서로 앞두고 대립하는 관계인데, 그 귓맛과 입맛은 한 민족 답게 비슷한 것 같아서. 

이영애의 캐릭터인 소피가 진행하는 수사 파트는 지금 기준에서 조금 아쉽다. 그냥 객관적인 관찰자 캐릭터가 하나 필요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럼에도 영화내내 정을 논했으면서 정작 마지막에 가서는 비극적인 전개로 한반도의 현실을 일깨우는 영화의 태도가 패기 넘치기도 하고 올바르게 보이기도 해서, 자잘한 몇가지의 흠들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 떠나서 결말이 너무 좋다. 흑백사진으로 마무리 되는 그 결말은, 그 이면의 이야기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예술비평적 측면을 그대로 형상화 해낸 것 같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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