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5 14:28

올드보이, 2003 대여점 (구작)


박찬욱 필모그래피 깨기 5탄.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찬욱 영화. 


스포보이!


이 작품 이전의 박찬욱 영화들은 대중성작가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보였다. 물론 <올드보이> 역시 굳이 따지면 대중성보단 박찬욱의 작가성에 더 많이 기댄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그러나 굳이 비율을 따지면 그렇다는 것이지, 대중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가 바로 이 <올드보이>였다. 장르사에 있어, 때때로 어떤 하나의 영화가 그 장르의 이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본 얼티메이텀>이 정립한 액션 스타일이 그 이후 2000년대 들어 만들어진 모든 액션 장르 영화들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올드보이> 또한 마찬가지다. <올드보이>는 미스테리 스릴러와 누아르 장르에 있어 충무로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까지 그 영향력을 뻗쳤다. 그야말로 한국 영화계의 올타임 레전드. 

바로 직전에 만들어졌던 <복수는 나의 것>이 '복수의 아이러니'에 대해 다루는 영화였다면, <올드보이>는 다소 뻔하게도 '복수의 허망함'에 대해 다루는 것처럼 여겨진다. 여기서의 허망함은 이우진과 오대수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 이우진 입장에서야 모든 삶의 목적이 오직 그 '복수'뿐이었으니 그게 완성된 순간 허망함을 느끼는 것은 일견 당연한 것이다. 그럼 오대수는? 오대수는 복수의 대상으로서 그걸 속절없이 당했을 때의 허망함. 그걸 마지막 표정으로 사력을 다해 표현 해내는 게 대단하다. 존나 웃긴 건 모든 걸 포기하고 개처럼 빌며 항복하는 듯 보였던 마지막 순간에도 오대수는 그 순간의 복수를 하고 싶어 이우진이 친절히 건넨 리모컨의 버튼을 마구 눌렀다는 거. 그런데 정작 그 버튼이 작동시킨 건 옆에 있던 스피커였고. 그리고 그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자신과 딸의 격렬한 헐떡거림이었고. 그 순간의 오대수가 너무 구질구질 추해서 오히려 웃겼다. 

누군가가 입밖으로 냈던 말이 설사 다른 누구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라도, 사적 복수는 하면 안 되는 게 맞지. 하지만 정말로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상대로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면. <올드보이>는 '복수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제대로 알려주는 일타 강사이자 최고의 교과서다. 물론 타란티노의 복수도 통쾌하지. 하지만 모름지기 복수란 것은 통쾌 하기만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상대에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함께 가함은 물론이요, 그를 아주 아래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기도 해야하지. 쓰다보니 좀 무서운데, 그렇다고 해서 복수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이 영화의 이우진이 세운 계획이 존나 무섭고 깔끔하다는 소리다. 납치해 15년 가둔 것도 모자라 잡혀온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채 군만두만 먹였다. 그리고 뜬금없이 풀어줬는데 풀어준 이유도 스무고개 하려 하고. 그와중 아내는 죽였고, 그걸로 누명도 씌웠고. 진짜 미친듯이 괴롭히다가 결국에는 친딸이랑 섹스까지 하게 만든 다음 그걸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에 공개함으로써 효율 120% 달성. 돈 많은데다 계획성에 실행력까지 갖춘 사람을 적으로 두면 이렇게나 무섭다. 

개봉한지 어느새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이기도 하고, 또 국내외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기도 해서 가타부타 내가 뭘 더 첨언하는 것은 그냥 낭비처럼 느껴진다. 딱 한 마디 정도만 더 하고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은데, 상술했던 이우진의 복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복수'라는 두 글자의 안과 밖을 모두 꺼내고 까뒤집어 만든 영화 같단 생각. 영화 역사상 최고의 복수. 그러니까 우리 모두, 말 조심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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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AGA 2022/07/09 16:32 # 답글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된 걸 봤는데, 역시 원조를 따라올 수 없었더군요. 전설의 장도리씬은 어설프게 흉내내는 정도였구요.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엘리자베스 올슨의 우월한 외모와 몸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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