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필모그래피 깨기 7탄.
섹스와 폭력, 근친과 고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화려하고 기괴한 벽지. 박찬욱하면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것들일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일견 박찬욱의 가장 큰 도전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부터 두 주연배우의 캐스팅, 심지어는 마케팅 단계에서 촬영 했을 포스터의 디자인과 분위기까지도 그 전까지의 박찬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이었기 때문. 이야, 그야말로 박찬욱 월드의 변방이자 뜬금없는 돌연변이네? 하지만 지금은 2022년이고, 그 2022년의 우리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의 박찬욱 작품들을 이미 보았다. 뒤이어 나온 <박쥐>와 <스토커>, <아가씨>까지 보고나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조금 달리 보인다. 아, 이거 박찬욱 영화 맞구나.
결국 박찬욱이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를 자주 다뤘던 것과도 얽히는 지점일 텐데, 그는 언제나 '같은 상태'의 존재들에 마음이 끌려왔던 것 같다. 고충을 가진 사람의 마음은 오직 같은 고충을 가졌고 또 가지고 있는 자들만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3인조>는 제목 그대로 3인조로서 인생 끝자락에 몰린 세 명의 이야기였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같은 피가 흐르는 한 민족의 이야기였고, <복수는 나의 것>은 끝자락에 이르러 지독한 블랙 코미디로써 복수를 하고 또 당한 자의 입장을 그려냈다. 거기에 알게 모르게 삽입된 근친 코드. <올드보이> 또한 같은 근친 코드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극중 이우진의 복수는 자신의 입장을 오대수에게 그대로 바톤터치 시킨 것이었지. <친절한 금자씨> 또한 한 인물에게 공통의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의 공감 치료 모임이었으며 이후 만들어진 <박쥐>와 <스토커>, <아가씨>는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아, 아마 박찬욱은 정통 멜로를 만들어도 잘할 것이다. 멜로라는 장르의 반 이상이 인물들 사이의 '공감'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여하튼 딴소리가 길었는데, 바로 그 관점으로 보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또한 전형적인 박찬욱 영화처럼 보인다는 것. 정신병원의 폐쇄 병동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소위 말하는 비정상적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끌고간다. 애초 이런 구성이면 정상적 범주에 드는 인물이 비정상적 인물을 달래거나 치료함으로써 구원해주는 서사가 일반적일 텐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비정상이 비정상과 함께 그들끼리의 구원을 찾는다는 썩 옳게 들리는 이야기로 서사를 귀결 시킨다. 모두가 두 주인공을 미친 사람들이라 여기고 손가락질 하거나 교정하려 드는데, 막말로 미친 사람은 오직 미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밖에서 애써 억지로 찾아준 구원보다는 그 안에서 스스로 찾아내는 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영화.
서사적 측면에서 전형적인 박찬욱 영화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영화의 스타일 자체가 박찬욱의 이전 것들과 많이 달라 보이는 것은 사실. 다른 건 몰라도 거기서 오는 재미 자체는 부인할 수 없고. 아, 그런 생각도 했다. 박찬욱은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마다 참 젊게 느껴진다는 것. 키치하게 연출하는 데에 있어 두려움도 없는 것 같고, 느닷없게 느껴지는 부분들마저도 그냥 강행돌파하는 것처럼 보이거든. 아마 그래서 다들 박찬욱을 충무로의 영원한 모더니스트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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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A 2022/07/09 16:28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