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8 16:39

아가씨, 2016 대여점 (구작)


박찬욱 필모그래피 깨기 10탄.

<올드보이>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스토커> 등에서는 시공간을 편집으로 여미고 저미는 방식을 통해 극중 인물들의 정신 상태를 감정해냈던 박찬욱. 그런데 <아가씨>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챕터 구성을 이용해 자기만의 <펄프 픽션>을 꾸며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이야기 자체가 갖는 흥미진진함도 있을진대, 결정적인 순간에서 만큼은 플롯 뒤섞기가 수훈갑이었다는 말. 

극장 개봉 당시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오랜만의 재감상에서도 히데코 아닌 숙희가 정신병원으로 끌려갈 때 임팩트가 꽤 강했걸랑. 그 이전 영화들에서는 촬영과 편집을 동반한 시각매체로써 영화가 갖는 힘에 몰두했던 느낌이라면, <아가씨>는 영화라는 자의식과 자부심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 더 큰 인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술적으로 이전 영화들에 비해 후달린단 소린 전혀 아니고. 그저 방향성을 달리 잡았을 뿐, 박찬욱은 박찬욱이다. 그래서 영화가 너무 예쁘다. 때에 따라선 좀 지독한 탐미주의 아닌가 싶어질 정도로. 

히데코와 숙희가 통하게 된 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이른바 '사랑의 힘'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또 한 편으로는 둘 다 자기 잇속만 챙기고 떠나려는 남자들에게 질려 버린 데에 대한 '공감의 힘'도 있었을 것. 그렇다고 해서 두 여자가 이기적인 남자들에 대항해 순수한 정의와 사랑의 힘으로 맞서는 얘기도 아니다. 뒷통수엔 뒷통수로 대항한다는 존나 명료한 이야기 귀결이 깔끔하다. 

박찬욱의 필모그래피를 탐독하면 탐독할 수록 느끼는 건데, 세간에 알려진 '배운 변태' 이미지완 다르게 이 사람 은근히 사랑 이야기 좋아하는 것 같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 3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다 사랑이 핵심 모티프로 작용 되었던 영화들. 데뷔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부터가 그렇고, 본인이 줄곧 본격 로맨틱 코미디라고 고집하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또한 마찬가지. <박쥐>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스토커>는 복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부모 자식간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또 아주 다른 이야기라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리고 그렇게 쌓아간 멜로에 대한 로망이 <아가씨>에서 본격적으로 터지는 모양새. 신작 <헤어질 결심>은 아예 대놓고 정통 멜로라 홍보하고 있던데, 확실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복수광의 모습과는 완전 정반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 김민희는 비교적 정확해 보이고, 김태리의 신선한 발견은 놀랍다. 다만 하정우는 조금 뻔하게 사용된 감이. 하지만 제일 안타까운 건 코우즈키를 연기하는 조진웅이다. 연기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역할이 노인에 가까웠던 만큼 실제 배우와 역할 사이 나이 차가 좀 어색하게 느껴짐. 혈기 왕성하고 팔팔한 젊은 배우가 애써 노인을 연기하고 있는 느낌이 확 체감된다고나 할까. 조금 뻔한 선택일지라도 이경영이나 김홍파 같은 실제 나이대가 좀 있는 배우들로 바꿔 생각해보니 그 변태성이 더 돋보일 수 있었을 것 같아 괜시리 아쉽다.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박찬욱의 영화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재밌게 본 영화. 아마 <올드보이>, <스토커>와 함께 트로이카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극히 내 취향으로. 

핑백

  • DID U MISS ME ? : 헤어질 결심 2022-07-10 16:39:00 #

    ... 궁극적 이유였던 영화. 그 전작들 리뷰는 여기 -&gt; 달해꿈 / 3 / JSA / 나의 것 / 올드보이 / 금자씨 / 싸이보그 / 박쥐 / 스토커 / 아가씨 / 드러머 걸 &lt;스토커&gt;와 &lt;아가씨&gt;는 플롯의 구성과 그를 수식하는 촬영, 편집적 측면들을 통해 서로 다른 시공간에 놓인 인물들을 콜라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