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1 15:43

컴온 컴온 극장전 (신작)


다음 세대, 그러니까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이라는 것을 안다. 그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게 지원해주고 또 그들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돌봐주는 게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라는 것 또한 안다. 다 맞는 소리지. 하지만 이는 이상적이기만 할 뿐, 현실의 육아는 희망이고 나발이고 그냥 전쟁의 연속이다. 아이를 통해 웃게 되는 좋은 순간들 역시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성질 뻗치고 열 받아서 다 부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을 테니. 

<컴온 컴온>이 그 부분에서 절치부심한 작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를 돌보는 성인 주인공이 그 친부모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자신의 친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친아빠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조카와 시간을 보내는 외삼촌의 이야기. 조카와 삼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기에, 그것도 다소 소원했던 가족 사이로 인해 꽤 오랜만에 재회한 그들 사이 관계이기에 영화는 육아를 보는 시선에서 나름의 객관성을 유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의 삼촌들이 조카를 사랑하지 않는단 성급한 일반화는 아니고, 친부모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겠냐는 말. 앞서 말했듯 주인공인 조니가 자신의 조카 제시를 만난 것부터가 꽤 오랜만이지 않았나. 거기에 조니는 자녀는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싱글이니 육아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게 당연했던 셈.

때문에 조카와의 관계에 있어 비교적 낭만적인 기대감만을 갖고 있던 그는 제시와 함께 시간을 보냄에 따라 조금씩 닳게 된다. 어른 말에 집중 못하고 자기 뜻대로만 하려드는 아이. 중요한 일을 해야하는데 자꾸만 방해하는 아이. 인파 많은 길거리에서 이따금씩 갑자기 사라져버려 공포와 화를 돋구는 아이. 그런 제시를 돌보며 조니는 조금씩 그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덩달아 그런 아들을 거의 홀로 키워낸 여동생의 입장과 상황에도 조금씩 공감하게 된다. 아기, 아이, 어린이. 사실 따지고 보면 어린 인간은 나의 작은 버전이지 않은가. 내가 어릴 때도 그와 같지 않았나. 게다가 생판 모르는 남의 아이도 아니고 피가 섞인 우리 가족의 아이잖아. 고로 제시는 결국 조니의 거울이다. 그리고 조니는 그 거울을 통해 한동안 멀어진 상태였던 여동생 비브와의 관계도 회복해 나간다. 모든 답은 결국 다 우리 안에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 덕분에 웃게 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나의 친한 지인 부부도 어린 아들을 몇년째 키우며 그런 말을 했더랬다. "이 아이 덕분에 정말로 많이 웃거든. 오늘 아침에는 우리들 침대로 와 호루라기를 불며 신이 나서 나를 깨우더라니까!" 맞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는 순간들도 있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아이 덕분에 즐거운 순간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함께 길거리와 해변가를 걷는 순간. 나의 일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또 가르쳐주는 순간. 내가 듣는 소리들을 너에게도 들려주는 순간. 그렇게, 조니는 제시 덕에 정말로 많이 웃었다. 

그래도, 우리가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지 않냐는 희망을 아이들에게서 본다. <컴온 컴온>은 때때로 힘들지만, 대개는 보람찬 육아의 순간들을 통해 우리가 아이들을 어찌 대해야 하는지 잘 보여 주며 그를 일깨운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내일의 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벰발 - 극중 LA와 뉴욕이 주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흑백 화면 안에서는 뉴욕이 더 강세인 것 같다. LA는 특유의 쨍하고 발랄한 색감이 매력인 곳인데 반해 뉴욕은 거대 마천루와 틈틈이 갈라진 좁은 골목 등으로 레이어가 더 다채로운 곳이니까. 흑백으로 담아내기에는 뉴욕이 더 유리할 수 밖에 없었던 듯.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