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3 16:02

올드보이, 2013 대여점 (구작)


개인적으로는 리메이크작 보다 원작을 더 선호하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무간도><디파티드>는 리메이크 짝패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동양 vs 서양, 감정 vs 비정, 로망스 vs 하드보일드, 클로즈업 vs 와이드 쇼트 등. 유위강, 맥조휘와 마틴 스콜세지는 여러모로 정반대 방향을 향해 진군한 감독들이었다 생각한다. 똑같은 텍스트로도 기획과 연출에 따라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구나-하는 좋은 예. 리메이크를 하는 데에 있어 이 정도 패기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원작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어떻게든 새로운 무언가를 내보이겠다는 결연한 의지. 

박찬욱의 <올드보이>와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 양상은 <무간도> - <디파티드> 관계와 확연히 다르다. 마틴 스콜세지가 어떻게든 자신의 색깔을 리메이크에 열심히 투영한 반면, 스파이크 리는 그냥 무심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성의가 없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정도 되는 감독도 각 잡고 현역으로 열심히 뛰는 판국에, 스파이크 리 당신이 다른 작품도 아니고 <올드보이> 갖고 이러면 그게 맞는 거냐?

연출에 힘이 없다는 것이 다름 아닌 가장 큰 문제다. 게으르고 맥 빠진다. 영화 시작하고 단지 몇 분만에 주인공의 성격과 그가 처한 상황, 심지어는 그의 주변 인물들까지 간략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데에 성공했던 원작. 하지만 스파이크 리의 리메이크작은 시종 엉거주춤한다. 오대수의 경찰서 장면이 효과적이면서도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것과는 달리, 술독에 빠져사는 조 두셋을 묘사한 리메이크작의 오프닝은 너무나도 뻔하고 전형적이다. 그리고 영화에 시간적 배경을 설명하는 자막은 도대체 왜 넣었나. 이야기 전개에 있어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을 뿐더러 어떻게 보면 영화의 핵심 반전을 위한 노골적인 장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설 감옥 안에서의 장면들이 너무 많고 길어. 이우진이 말하지 않았나, 왜 15년 간 가뒀는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15년 후에 풀어줬느냐-라고.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이우진의 그 말을 성실히 받들어, 15년 간의 감옥 생활은 촌철살인으로 짧게 표현해냈다. 나머지는 몽땅 출소 후 추적에 할애. 이에 반해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는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으면서도 사설 감옥 안에서의 시간 묘사에 더 힘을 쏟는다. 아무래도 감독과 각색 작가에게는 이 사설 감옥이란 설정이 더 재미있었나 보다. 

원작의 15년에 5년을 더한 무려 20년. 원작 영화 보다 더 오래 갇혀 있었다는 말로 자위하고 싶었던 것일까, 리메이크작은 그 20년을 주구장창 묘사한다. 그렇게 의미 없는 장면들이 계속 속출. 쥐는 왜 키웠냐... 아니, 무엇보다도 그 전에 어떻게 친구가 된 건데? 그리고 액자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그 벨보이는 무슨 의미야? 아, 그냥 조 두셋이 미쳐가고 있다는 표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거지?

수감 생활도 원작에 비해 5년 늘렸는데, 미스테리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에도 무언가를 더하지 않았을 리 없다. 자신의 친누나와 근친상간 관계였던 이우진. 거기서도 무언가 차별점을 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리메이크작은 거기다 알고보니 걔네 가족 전부가 다 근친 섹스 중이었다!-는 것으로 곱빼기 사리 추가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같은 설정 변경은 오히려 원작의 반전이 갖고 있던 풍미를 망친다. 오늘따라 자꾸 이우진의 말을 인용하게 되는데, 결국 중요한 건 이우진의 마지막 유언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에 깃들어 있지 않냐? 근친상간이든 뭐든 다 떠나서 결국 둘은 사랑하는 관계였다는 게 중요한 거잖아. 그게 결말을 더 비극적으로 만드는 거잖아. 서로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는 그 사실이. 이와 비교해보면, 리메이크작의 온가족 근친 파티 설정은 명확히 드러나진 않아도 관객들에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가르쳤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럼 그건 서로 간의 진심 어린 이성 관계가 아니잖아... 게다가 부자 사이의 동성 섹스라니... 이 영화의 제작진들은 원작이 가지고 있던 근친상간의 강렬함만을 기억했나보다. 그래서 어떻게든 강렬하면 된 거 아니냐는 데까지 온 듯함. 그리고 그 모든 반전이 드러나는 부분. 정말이지 맥 빠질 정도다. 두 주연배우의 연기도 믿기지 않을 정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자꾸 원작과 비교하게 되어 미안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고소하다. 애초 리메이크라는 게, 원작의 후광을 등에 업고 뭔가를 해보겠다 선포하는 기획이잖아. 그런데 원작의 이름값만 쏙 빼먹을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이 리턴에는 하이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는 법. 잘 했어도 본전이었겠지만 못 했으면 쏟아지는 비판들을 그냥 달게 받을 줄도 알아야지. 

덧글

  • SAGA 2022/07/16 10:30 # 답글

    디파티드를 제대로 각잡고 만든 마틴 스콜세지를 보고 배웠으면 하더군요.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건 엘리자베스 올슨 밖에 없었네요...
  • CINEKOON 2022/08/08 16:07 #

    차라리 <무간도>와는 정반대의 결을 선택해 리메이크로써의 새로움을 보여주었던 마틴 스콜세지처럼 아예 다른 길을 걸었더라면 혹시 또 몰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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