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0 13:34

더 킬러 - 죽어도 되는 아이 극장전 (신작)


장혁이 주연한 <더 킬러 - 죽어도 되는 아이>를 기다리며 그 이야기의 만듦새나 신선도에 대해 기대한 관객들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된다. 슬프게도 그게 사실이잖아. 그리고 더 슬픈 사실로, 실제 <더 킬러 - 죽어도 되는 아이>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야기는 괴상하고 그 톤은 들쭉날쭉하며, <테이큰>과 <존 윅> 등을 교배시켜 나온 듯이 전형적이다. 

괴상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영화를 보는내내 정말로 그렇게 느꼈다. 이건 재밌거나 재미없다는 문제가 아니고, 말그대로 그냥 괴상하다는 것. 킬러 주인공의 아내는 왜 여행 당일이 되어서야 남편에게 꼬맹이 하나를 맡아달라 떠미는 것인가. 보통 이런 종류의 중요한 부탁은 여행 계획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진작 말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누가 친한 언니랑 국내 여행을 30일씩이나 가... 그건 여행이 아니고 그냥 한 달 살기잖아. 뭐, 그것까진 개인의 여행 취향이라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세부 요소들도 다 이상하다. 주인공에게 떠맡겨진 소녀 윤지는 대체 왜 그 날 밤 만난지 얼마 안 된 킬러 아저씨를 전화로 부른 것일까? 분당 아저씨, 분당 아저씨라고 부르던데 그럼 주인공이 분당 산다는 소리 아님? 근데 본인은 그 야밤에 홍대 있었고. ......내가 방금 네비게이션 찍어봤는데 분당역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자차로 강변북로 타면 딱 1시간 6분 걸린다고 나왔다. 늦은 밤 새벽이라 도로 위에 차가 얼마 없었다고 해도 어쨌거나 서울 끝에서 저쪽 끝으로 부른 거잖아. 근데 왔더니 뭐가 어째? 됐으니까 다시 돌아가라고? 이런 싸가지-

트라우마라고 하기에도 민망한데, 어쨌거나 주인공의 슬픈 과거 설정을 위해 영화는 또 과거 회상을 들먹인다. 그런데 그 장면도 진짜 괴상함. 친딸이나 친조카도 아니었던 소녀가 자기 죽여달라 의뢰 했었던 건데 그대로 죽여줘놓고 혼자 상심에 빠진 듯 코스프레를 하는 주인공의 꼴이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주인공의 내레이션... 장혁의 연기 어투도 뭔가 웃기거니와 뭔 소설도 아니고 왜 이리 주인공의 감정을 다 구구절절 말로 써놨는지 듣는 내가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괴상하고 조악한 영화인데... 놀랍다면 놀랍게도 영화는 '액션'에 모든 것을 올인해뒀다. 전반부의 액션이 조금 단순하긴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화력이 더해지며 차차 나아진다. 그리고 정말로 열심히 성심성의껏 찍었다는 느낌. 액션을 대하는 그 태도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건 다름아닌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올라오는 NG 모음집이다. 극중 인물들의 에필로그를 다루며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태도 대신, 우리가 정말로 열심히 찍었는데 여러분들도 구경 한 번 해보세요-의 태도. 아아-, 장혁은 이제 점점 성룡과 톰 크루즈의 길로 가는 것인가.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좋은 점은, 주인공이 쿨하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악당들을 적당히만 패죽인다. 딱 영웅적으로 보일 수 있게끔만. 겁대가리 없이 달려드는 양아치 고삐리들?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면 적당히 죽빵만 날리고 끝났겠지. 하지만 초등학생을 다룰 때조차도 최선을 다 한다던 김성모 만화의 대사라도 본 것인지, <더 킬러>의 주인공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자들 모두를 그냥 쿨하게 다 죽여 버린다. 짐짓 폭력적으로만 들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쉽게 볼 수 없는 쿨한 태도가 너무 좋더라고. 이야기 답답하게 진행될 것도 없으니 그냥 앞길을 막는 자 모조리 다 주님 곁으로 보내버리겠다는 캐릭터의 성격이 뭔가 썩 만족스러웠다. 심지어 얘가 그 소녀를 구하러 다니는 이유도 웃김. <레옹>이나 <아저씨>, <로건>처럼 주인공과 소녀 사이에 뭔가 특별한 유대관계가 생긴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서 <테이큰>처럼 친딸이었던 것도 아니고. 그럼 구하는 이유가 뭐냐고? 내가 봤을 땐 그저 아내에게 혼나기 싫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 누군지는 몰라도 이 영화의 각본가는 유부남들의 생태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이가 틀림없다. 

"세상에 죽어도 되는 아이는 없어"라는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교훈을 설파하며 마무리 되는 영화. 근데 웃긴 건 정작 그 말을 내뱉는 주인공은 이미 아이들을 좀 많이 죽였다는 거... 어떻게 보면 내로남불인데 특유의 그 쿨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뱀발 - 돌이켜 보니 감독과 배우 콤비의 전작이었던 <검객>도 액션만큼은 나름 꽤 재밌게 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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