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7 10:55

댄싱 히어로, 1992 대여점 (구작)


원제는 'Strictly Ballroom'. Ballroom은 사교 댄스라고 보면 될 것 같고 Strictly는 '엄격한' 등의 뜻을 갖고 있으니, 직역하면 '엄격한 사교 댄스' 정도 될라나. 근데 어째 국내 제목은 '댄싱 히어로'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일본판 제목을 그대로 수입해오면서 생긴 폐해인 듯. 화면에 금가루 뿌린 듯 화려하고 과시적인 미장센을 자랑하는 바즈 루어만의 첫 작품이고, 개인적으로는 이후 작품들을 다 합쳐도 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작이 아닐까 싶다. 

유서 깊게 내려오는 전통을 교과서처럼 재현해내 모범적인 모습으로 성공하는 예술가들도 존재하지만, 그 외연을 적극적으로 확장시키는 건은 언제나 도전 정신으로 그 선을 뛰어넘는 예술가들이다. 모든 예술 계통이 보통 다 그렇지. 그러다보니 그게 화가든 가수든 간에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들은 대개가 그 주인공을 '선 넘는 사람들'로 설정하기 마련. 전통의 강호가 예약되어 뻔한 승리를 가져가는 것보다야, 특이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외인구단 마냥 다른 이들의 무시를 받던 약자가 다크호스로 급 부상해 기어코 승리를 쟁취한다는 이야기가 훨씬 더 재밌을 수 밖에 없으니. 그런 점에서 <댄싱 히어로>의 두 주인공 스캇과 프랜은 역시 마찬가지다. 엄격하게 구분된 사교 댄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리듬을 느끼며 자신만의 춤을 완성해나가는 둘. 이러다보니, 원제인 'Strictly Ballroom'은 일종의 반어법처럼 느껴진다. 

사교 댄스 대회가 주 소재인 만큼 춤이라는 예술을 다룬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스포츠 영화의 양식까지 띄고 있다. 근데 또 이런 스포츠 영화들 대개가 다 무헙 영화랑 비슷하단 말이지. 남주인공 스콧 역시 정파에 대항하는 사파 아닌 사파로서 활약을 하고, 이후엔 여주인공 프랜의 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 기연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다시 금의환향 해서 자신만의 무공으로 중원 평정. 프랜네 식구들과 모여 신나게 춤추는 장면 몽타주가 나오는데, 어째 무협 영화에서 본듯한 그림이라 괜시리 웃겼다. 

안 그래도 90여분으로 런닝타임이 짧은 축에 속하는데, 영화의 전개가 쾌도난마와 다름없다. 자기만의 춤을 추다 낙인 찍힌 스캇의 추락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묘사되고 파트너와의 이별, 가족 관계, 여주인공 프랜 설정, 후에 밝혀질 미스테리까지 영화가 알차게 마구 찍어낸다. 질질 끄는 것보다야 빠른 전개로 치고 나가는 게 차라리 나으니 할 말 없긴 한데, 이후 이어지는 전개들 또한 전형적. 어색하던 두 주인공이 춤으로 단련되어 끝내는 사랑의 결실까지 맺게 된다-는 게 뻔하지 않을 수 있겠냐.

하지만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그 뻔한 이야기를 보며 가끔 기분 좋게 눈물을 흘렸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너무 귀엽고 순수했다. 두 주인공이 함께 차근차근 스텝을 익혀나가는 모습을 볼 때 특히.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언가에 열심인 사람들의 모습에 쉽사리 울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동안 등장했던 모든 크고 작은 인물들을 한 번에 다 감싸 안아주는 것만 같은 전개가 펼쳐져 함께 소리를 질렀다. 스캇의 연속 배신에도 언제나 YES로 일관하는 프랜의 태도가 다소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영화의 다른 부분들이 좋으니까. 

이후 이어지는 <로미오+줄리엣>과 <물랑루즈>,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까지 바즈 루어만의 영화들은 언제나 과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장르만 다르지, 마이클 베이랑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었지. 그런데 이 <댄싱 히어로>는 데뷔작이라 그랬던 건지 바즈 루어만의 영화치고 뭔가 정제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또 예뻐. 그 담백한 예쁨이 기쁘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바즈 루어만의 개그 감각이 뛰어나다는 걸 이 영화 통해 알 수 있기도 했고. 왜 이후에는 이런 개그 요소 싹 다 없앤 걸까. 영화를 보는내내 기분 좋게 웃었고, 기분좋게 울었고, 기분좋게 기뻤다. 엄청 뻔하고 뻔하고 또 뻔하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 재미를 다시금 깨달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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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엘비스 2022-07-30 15:50:32 #

    ... 바즈 루어만의 이전 작품들은 여기 -&gt; 스캇 / 로미오 / 크리스티앙 / 드로버 / 개츠비 &lt;보헤미안 랩소디&gt;가 프레디 머큐리를 위시한 퀸을, &lt;로켓맨&gt;이 엘튼 존을 다룬 이야기였다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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