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 역시나 충분히 출중한 미모를 가진 배우 임에도, 줄리엣으로 나온 클레어 데인즈를 그냥 압살해버린 로미오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만 기억되는 작품. 그리고 호주 출신의 바즈 루어만을 할리우드에 무사히 안착시킨 흥행작. 그런데 나는 도저히 안 맞더라.
셰익스피어가 쓴 고전을 현대 배경으로 재해석해 만든단 기획에는 혹한다. 고전의 풍미는 그대로 가져가되 현대화로 새롭게 승부보겠다는 거잖아. BBC의 드라마 <셜록>이 그걸 아주 잘 해냈었지. 결과론적으로 실패한 작품이기는 했어도 <서복> 또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때문에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줄리엣>은 그 점에 있어 흥미를 끈다. 문제는 그 현대적 재해석을 많이 할 용의까진 없었다는 거. 칼 대신 총 쓰고 마차 대신 자동차 타는 것 정도로만 하자-라면서 합의 했던 것 같다. 그외 나머지는 몽땅 고전의 이야기대로. 심지어는 대사조차도.
거기서 문제가 터진다. 차 타고 총 차고 다 했지만 정작 인물들이 내뱉는 말들은 모두가 다 고전적 문어체. 물론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근데 난 아님. 보는내내 저 달빛의 은은한 눈물이 내 사랑을 적시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인물들의 주둥아리를 그냥 쳐주고 싶었다. 지금 상황 존나 심각한데 뭐하자는 거야, 이거?
바즈 루어만의 금가루 미장센은 여기서도 터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조우하는 전설의 어항 장면은 한쌍의 인어왕자와 인어공주를 보는듯해 넋이 나가고, 이후 이어지는 몇몇 장면들 역시 감각적이고 예쁘다. 그런데 그게 또 굉장히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해. MTV 스타일을 표방해 일부러 뮤직비디오스럽게 만든 건 알겠는데, 그게 너무 과해 오히려 영화라기 보다는 그냥 비디오 화보집 같은 느낌. 게다가 그 내용도 21세기 문명인이라면 대부분 다 알만하잖아. 그러니까 뻔한데 예쁘기만 한 거.
클레어 데인즈 예쁘고, 예전에 볼 때는 나오는지도 몰랐던 존 레귀자모 젊은 모습 진짜 생뚱맞게 멋지다. 폴 러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생겨가지고 괜시리 놀랍고. 하지만 정말이지 어쩔 수 없게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왕년에 감탄을 하게 된다. 나 이거 거의 몇 십년 만에 다시 보는 거였는데 어항 장면에서 디카프리오 나오는 순간 입밖으로 "씨발..."이란 소리만 나오더라. 영화보다 거울 봤는데 웬 오징어가 하나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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