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1 10:43

한산 - 용의 출현 극장전 (신작)


실제 역사 속의 모습과는 당연히 차이를 보이겠지만, 영화 안에서의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시 적장 임에도 높이 평가할 만한 장수로 묘사된다. 조선 입장에서야 뼈아픈 패배였겠지만, 불과 1600명 정도 되는 군사로 6~8만 여명의 조선군을 패퇴시킨 왜군 입장에서 광교산 전투는 실로 엄청난 전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를 이끈 게 바로 와키자카. 젊어 혈기왕성하며, 용맹 하면서도 전략적이다. 게다가 역사에 남을 대승을 거둔 직후 아닌가. 그 때문이었는지, 와키자카는 한산에서의 전투를 광교산 전투의 연장선으로 본다. 광교산에서 그랬듯, 빠른 돌파력으로 상대의 진영을 찔러 속전속결하려는 전략을 편다. 하지만 기세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전쟁에서는 각각의 전투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승리하는 자는 언제나 준비하는 자이고, 이전의 병법을 반복하기 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새로운 도전을 감내하는 자가 곧 승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가 1592년 당시 조선 바다에 있었다. 더 정확히는 음력으로 1592년 7월이 되는 시기, 남해에 이순신이 있었다. 

<명량 - 회오리 바다>에서 최민식이 이순신을 '용장'으로 표현했다면, <한산 - 용의 출현>에서의 박해일은 그를 '지장'으로 빚어낸다. 물론 거기에는 아직 더해지지 않은 역사적 맥락이 이유로 있을 것이다. <명량>의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직접 겪고 칠천량 해전을 멀리 겪은 이후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더 잃을 수는 없었기에 맹렬했고, 또 분노를 토해냈었다. 이에반해 <한산>의 이순신은 아직 젊고, 무엇보다도 좀 더 차분한 상태. 그 점에서, 동일한 인물을 다루고 있는 시리즈 영화임에도 주요 캐스팅을 달리 해낸 영화의 기획력이 조금 돋보인다. 어차피 다른 얼굴을 쓸 거라면 조금씩은 차별화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옳아보인다. 

재밌는 점.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내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마치 와키자카인 것처럼 짜여있다는 점. 실제로 셈해본 것은 아니지만, 영화 속 대사도 이순신보다 와키자카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등장하는 물리적 분량도 그렇고. 게다가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한산도 대첩에서, 보통의 전쟁영화들이 주인공에게 부여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해 이어진 이미지 라인 또한 이순신의 조선군이 아니라 와키자카가 이끄는 왜군에게 주어져있다.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이순신 영화인데도 왜군은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반대로 조선군은 왼쪽으로 맞서는 형국. 내 기억이 맞다면 <명량>에서의 구도는 완전 정반대였을 것이다. 

그 연출은 지장으로서 이순신의 면모를 표현 해낸다. 와키자카는 이전에 한 번 먹혔던 병법을 그대로 고수하는 인물이고, 또 전투 상황에서 "이순신, 네놈이 어찌 나올지 보자!"를 가장 많이 내뱉는 인물이다. 예컨대 '나의 병법이 완벽한데 네가 어떻게 받아들 수 있을까?'에 가까워 보인다. 반대로, 이순신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익진이라는 새로운 진법에 도전하는 인물이며, 애시당초 주변에서 뭐라 하든 말든 말이 많은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적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영화 초반, 왜군 입장이 되어 높디 높은 성벽과 마주하는 꿈이 그 예다. 신중한 지혜로움. 게다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딱딱했던 인물. 조선 바다의 수퍼히어로는 그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어 낸다. 

영화로써는 이전작 <명량>이 받았던 비판점들을 대부분 수용해 고쳐냈다는 것이 놀랍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걸작이 나온 건 아니다. 하지만 대중영화의 감독으로서 평론가와 관객들의 피드백을 듣고 겸허히 수용해냈다는 점은 높이 사야만 한다. 비록 그 방식이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만, 언제나 말했듯 모든 예술작품들이 그렇듯이 영화도 창작자의 태도 역시 중요한 법이니까.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부는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전형적이라 지루함을 산다. 조선군과 왜군 양집단을 오가며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켜내는 영화인데, 그 각 인물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점 또한 다소 아쉬운 부분. 

소위 말하는 '국뽕'이라며 혀를 끌끌차도 할 말 없긴 한데, 영화의 후반부를 보며 그런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 내가 직접 당했던 것도 아닌데,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괜시리 억울해졌다. 대부분의 전쟁은 슬프게도 불의 대 불의의 싸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임진왜란에 있어서 만큼은 극중 이순신의 표현을 빌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은 의와 불의 간의 싸움이라는 말. 불의가 우리를 덮쳐올 때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불철주야 유비무환의 정신을 기르자!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 드는 걸 보니 이거 딱 정훈 교육용 영화로 쓰기에 좋겠다. 아마 내년쯤부터는 실제로 해군에서 종종 틀어주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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