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0 15:19

보일링 포인트 극장전 (신작)


시내 노른자땅에서 점차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고급 레스토랑. 하지만 우아한 백조도 수면 아래에선 바쁘다 했던가. 레스토랑은 말그대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주방장은 이혼에 육아에 이사에 재산탕진까지 겹쳐 술과 약으로 연명하고 있고, 그 밑에서 그나마 팀원들을 이끌어가던 부주방장은 운영진과 마찰을 빚는다. 매니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운영권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고, 그 아래 종업원들은 여러 유형의 진상들에게 각각 성희롱과 인종차별 비스무레한 것들을 겪는다. 그와중 5점이었던 레스토랑의 위생 지수도 3점으로 떨어진 상황. 제목 그대로, <보일링 포인트>는 레스토랑의 사람들을 끓는점 직전까지 밀어붙인다. 

한 레스토랑의 연말 대목 저녁 장사 시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그 안에 각기다른 상황에 처한 여러 인물들을 쏟아넣는다. 그리고 그걸 하나의 롱 테이크로만 담아낸 영화적 형식이 너무나도 적절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요즘 유행하는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촬영된 건 아닌 것 같고, 정말로 별다른 눈속임 없이 하나의 테이크로 거의 두 시간에 달하는 영화를 찍어낸 것 같던데 그 과정도 대단하지만 결과로써도 내용과 썩 잘 맞는 형식이라 박수를 치게 된다. 레스토랑이라는 좁은 공간 이곳 저곳을 누비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담아내는 카메라. 그 카메라를 통해 화면 안의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호흡을 저당 잡히게 된다. 

선자불래 내자불선이라고 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은 쉽게 오지 않고, 제발로 찾아온 사람은 좋은 뜻을 갖고 오지 않는다. <보일링 포인트>는 그 단순하고 명쾌한 삶의 진리를 긴박 하면서도 느긋하게 보여 준다. 알게 모르게 찾아온 식약처 공무원은 그 사연이야 어찌됐든 일인 걸 어쩌겠냐며 레스토랑의 위생 점수를 깎아버리고, 갑자기 등장해 밥이나 먹고 가겠다던 친구는 재수없는 말로 허세부리더니 결국엔 빌린 돈 갚는 대신 자신과 함께 일해보자며 앤디를 압박한다. 이외에도 그야말로 환장할 만한 사건들의 연속. 물론 그중엔 짐짓 합당해보이는 것들도 존재한다. 어찌되었든 주인공은 알콜 중독자에 약물 중독자잖아. 친구 돈 떼먹은 것도 사실이고. 여기에 매니저가 무능하고 소통불가인 것도, 설거지 담당이 매번 지각하고 농땡이 치는 것 또한 관객 입장에서 봐도 뭐라 할 말 없는 포인트. 

감독인 필립 바랜티니는 과거 연기 활동과 요리사 일을 병행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실제로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수석 요리사 자리에까지 오른 적이 있다고. 그 때 했던 여러 경험들을 하루의 일로 압축해 만든 것이 이 <보일링 포인트>라고 하는데, 그 점에서 주제의식을 떠나 보아도 그저 긴장감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아이디어에 부합하는 멋진 연출법을 잘 찾아냈던 것 같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게 그냥 롱 테이크로 만들어낸 것이든 아니면 원 컨티뉴어스 샷으로 여러 쇼트 붙여 만들어낸 것이든 간에 기술과 기획은 이야기와 감정을 수식하는데 쓰이는 것이 최선이란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보일링 포인트>는 팔팔 끓다가 부드럽게 담기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덧글

  • 잠본이 2022/08/11 10:53 # 답글

    요리와 서스펜스와 롱테이크라니 독특한 조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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