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7 11:10

헌트 극장전 (신작)


스포일러 사냥.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한 영화로 조우한 이정재와 정우성. 연예계 대표 단짝이라 청담부부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각별하다고 한다. 그런 둘이 영화에서 다시 만났어. 게다가 그 장르는 에스피오나지. 그렇다면 어느정도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에스피오나지는 물론 <팅커 데일러 솔져 스파이>마냥 충분히 건조하게 그릴 수도 있는 장르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일종의 멜로 드라마로써 제작된다. 인물들 사이 관계와 그로부터 촉발되는 감정의 격랑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르라는 거다. <색, 계>의 주인공 왕치아즈는 매국노 이를 암살하기 위해 그에 접근하지만 결국 사랑을 느끼고 임무에 실패한다. 또한 <타인의 삶> 속 주인공 비즐러 역시 독재 정권에 대항하던 드라이만을 감청하다 끝내는 그의 삶에 연민과 공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에스피오나지 장르 영화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사로운 정 때문에 정작 임무에는 실패하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뤄왔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영화계 대표 커플 이정재와 정우성이 주연이라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감정적으로 충만한 영화를 예상할 수 밖에 없게 되지. 누아르라는 장르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무간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헌트>가 감정으로 충만한 영화인 것은 맞다. 하지만 동시에, 각각 이정재와 정우성이 연기한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에게 이른바 브로맨스를 느끼지는 않는다. 서로 빤쓰 못 벗겨 안달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둘이 진한 우정이나 동지애 따위로 묶이지는 않는단 소리. 허나 영화의 결말에 가서 둘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데, 그 이해의 발단이 너무나 씁쓸하다. 

안기부에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아다니던 사내 스파이, 즉 동림은 박평호와 김정도 모두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알고보니 모두 다 스파이였다는 진실. 하지만 둘의 신념과 임무는 동일했되, 그 결과는 달랐다. 박평호는 북한측 인물로,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위해 안기부 내에서 정보를 빼돌리고 종국에는 남한의 대통령을 암살하는 데에 일조하려 한다. 반면, 김정도는 당시 군인 신분으로 5.18을 직접 목도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남한의 대통령을 직접 암살하려 한다. 이렇듯, 각자의 소속은 달랐으나 둘의 임무는 대통령 암살로 동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은 같은 신념을 공유하고 있었다. 박평호는 비록 북한측 인사이지만 남북한 모두의 국민들이 불필요하게 희생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 김정도도 마찬가지. 무엇보다, 이 인물은 군인으로서 자국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학살에 일조 했었다는 데에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인물이지 않은가. 서로 다른 소속이었지만 같은 신념과 같은 임무를 공유했던 두 사람. 어찌보면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던 둘이었지만, 서로 달랐던 각자의 소속과 그 상황 때문에 역사는 결국 그 둘을 대립으로 몰아간다. 

종국에 박평호는 신념을 위해 임무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으로, 김정도는 신념을 위해 임무를 속행해야하는 상황에 몰린다. 그렇게 치달아가는 둘의 대립. 박평호와 김정도의 그 대립에는 신념을 위해 임무마저 포기하는 시대정신의 박력이 깃들어 있다. 내가 믿고 있는 대의를 위해 남들이 부르짖어 강요한 대의를 포기할 수 있는 대의. 대통령을 죽이는 것도, 남북한을 통일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내 눈 앞의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리는 게 중요했던 박평호가 자신과 전혀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던 김정도를 어떻게든 살리고자 하던 마지막 모습은 그래서 더 씁쓸했다. 

국민과 인민을 목적으로 두었던 두 사람의 때이른 것처럼 느껴지는 죽음. 그에 반해 정작 윗동네의 최고 령도자는 오래 살다 세습까지 했고, 아랫동네의 대통령은 최근까지 천수를 누리다 이제서야 사망했다. 왜 역사는 항상 이런 식인가. <헌트>는 우리가 살아온 그 애처롭고 비정했던 역사를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형태로 꿋꿋이 재현해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