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9 17:13

극장전 (신작)


행운의 나라가 마냥 좋기만한 행복의 나라는 아니었다는 이야기. 행복하기 위해서는 삶에 행운도, 또 그 이상 만큼의 불운도 있어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고 영화적으로도 좋은 주제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나는 <럭>을 보는내내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나. 디즈니 픽사에서 스카이댄스 스튜디오로 적을 옮긴 존 라세터의 복귀 후 첫 작품. 그래서 나는, 존 라세터가 그동안 <인사이드 아웃>을 남모르게 질투해왔던 건 아닌지 의문스러워졌다. 

영화의 주제와 그를 전달하려는 이야기 전개가 <인사이드 아웃>의 그것과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이제 막 이사를 끝내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고 하는 여성이라는 점, 각각 운과 감정으로 표현되는 타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 삶의 균형을 위해서는 긍정과 함께 부정까지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메시지까지 전반적으로 비슷하다.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은 훌륭하다 못해 정말이지 뛰어난 작품이었잖아. 그런 작품과 정면으로 붙은 상황이다 보니, <럭>은 여러모로 비교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게다. 

세계관의 작동 문제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인사이드 아웃>의 인간 내면 세상은 썩 적절해보였다. 각기다른 감정들을 의인화 했던 것도, 그리고 그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과 그 이유까지도 모든 게 알맞게 돌아갔다. 우리가 계정 비밀번호나 공부 했던 내용 등 정작 중요한 것들은 잘 기억해내지 못하면서도 어릴 때 잠깐 들었던 CM송의 구절을 반복해 흥얼거리는 이유는 왜일까? 특정 상황을 복기 하면서 기쁨이나 슬픔 등의 여러 감정들을 총체적으로 함께 느끼는 이유는 또 왜일까? <인사이드 아웃>은 이런 사소한 설정들에 재미나고 감동적인 상황들을 붙여내 설명함으로써 공감과 재미를 동시에 잡아냈었다. 반면 <럭>은 어떠한가? 기본적으로 이 세계가 왜 존재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 행운의 나라와 불운의 나라는 모두 인간들의 삶에 끼어드는가. 왜 그곳의 마스코트는 고양이인가. 레프리콘들은 정확히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등등 따위가 잘 납득가지 않는다. 뭐, 애니메이션 한 편 보면서 그딴 볼멘소리하고 있냐 따진다면 할 말 없긴 한데.

극중 불운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을 주인공이 일상 속에서 겪는 불운 장면들 같은 경우는 재미있다. 하지만 딱 그 뿐. 정작 중요하게 소개 되었어야 했던 행운의 나라는 디테일과 재미가 많이 떨어졌던 것 같음. 게다가 참으로 이상하게도, 애니메이션의 CGI 질이 뭔가 어색하다. 한 올 한 올 날리는 머리카락이나 복잡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묘사 같은 건 잘했지. 근데 결정적으로, 인물들의 눈이 뭔가 너무 공허해 보인다. 다른 거 다 잘 해놓고 눈 묘사를 망치니 영혼이 없는 느낌.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뻔한 기획이었다 생각한다. 그래도 그걸 존 라세터가 어찌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된 듯. 그나저나 이 사람 미투 건은 어떻게 됐지. 뭐 반성하는 모멘트라도 제대로 있었나? 사과했다고? 근데 이렇게 복귀를 빨리 해?

덧글

  • 역사관심 2022/08/20 14:51 # 답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디즈니 캐릭터는 정말 이젠 구분이 안갈 정도네요.. 다들 너무 비슷한 이미지에 비슷한 미소에 농담... 그리고 비슷한 플롯전개.. 뭔가 공장제같은 느낌이 납니다. 100% 사견이지만요.
  • 잠본이 2022/08/22 10:41 #

    저 영화는 디즈니 출신 인력이 참가하긴 했어도 다른 제작사 작품인데 이런 인상을 줄 정도라면 차별화에 처절하게 실패했다는 소리겠죠(...ㅠㅜ)
  • 역사관심 2022/08/23 02:42 #

    아 그렇군요; 말씀대로 이젠 정말 저런 표정만 봐도 손이 안갈 지경입니다. 뻔한 전개..뻔한 노래, 뻔한 감성과 유머. 가족주의나 이런 느낌으로 끝날 것도 안봐도 알 것같구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변주는 했지만 메인테마는 그대로인게 이젠 한계네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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