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9 18:59

극장전 (신작)


팬들에겐 미안한 말일 테지만, 조던 필은 확실히 과대평가 받은 감이 좀 있다. 전작들인 <겟 아웃>과 <어스>의 작품성을 떠나, 단 두 편만에 조던 필은 설정놀음 하기 좋아하는 관객들의 훌륭한 메인 디시가 되었다. 한마디로 영화를 뭔가 있어보이게 만든다는 말씀.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10여년 전의 크리스토퍼 놀란이 보이는듯해 좋다가도 싫고 또 싫다가도 좋고. 어쨌거나 그의 세번째 작품이 될 이번 신작 <놉>도 비슷하다. 영화는 상영이 끝난 그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여기는 분석광들에게 <놉>은 꽤 그럴듯한 먹잇감이다. 다만 <놉>은 굳이 분석에 들어가지 않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오락영화다. 오히려 분석하려는 의식과 행위 자체가 방해물이 되는 듯한 경험. 


스포일러 예쓰


있어보이는 것들 이것저것을 다 쳐내고 나면 사실 영화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콤팩트하다. 그냥 우주에서 온 괴물을 다루는 영화라고 보면 된다. 아니, 더 간단히 말하면 그냥 <죠스> 같은 괴수 영화로 봐도 될 지경. 그 탄생과 전사는 비록 알 수 없으나 더 맛좋은 먹이를 찾아 지구로 건너온 것처럼 보이는 비행접시 형태의 외계생명체. 그 외계에서 온 괴물이 주인공 가족과 친구들을 잔뜩 괴롭히며 목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마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여기에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반기를 들고. 식인괴물 때려잡기 위해 머리 좀 쓰는 인간들. 이게 <죠스>나 <불가사리>랑 뭐가 달라.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죠스> 역시 발에 채일 정도로 평범한 영화일 뿐이었어야 한다. 그러나 <죠스>는 지금까지도 불세출의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잖아.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결국 연출이지. 영화의 기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 경지. 그리고 감히 스필버그를 언급하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조던 필 역시 특유의 연출력으로 자칫 뻔해보이는 <놉>을 말그대로 재밌게 만들어냈다. 광활한 하늘 위의 구름 사이를 가로지르며 목표물의 동태를 살피는 진 재킷의 얄궂음과 그 직후의 급 하강이 공포스럽고, 식탁 밑에 숨은 어린 아이의 일관된 시점으로 연출되어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침팬지 파티는 그야말로 일순간 숨을 죽이게 만든다. 장르 영화는 그냥 정해진 공식대로만 만들면 된다고 뻐기는 다른 영화제작자들에게 <놉>은 좋은 교보재일 것이다. 

더불어 <놉>은 끊임없이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를 언급하고 또 언급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바로 그 부분에서, 앞서 말했던 조던 필의 작가주의가 발화되기 시작한다. 외계생명체와의 사투를 넘어선 무언가가 이 영화에 있을 거라 관객들을 믿게 만드는 기적. 물론 뭔지는 대략 알 것 같다. 영화라는 건 기본적으로 시각매체이고, 또 대부분의 시각매체들이 으레 그랬듯이 역사가 길어지면서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것은 액션 블록버스터 시리즈 영화의 거대한 양감일 수도 있고, 저예산 호러 영화의 피칠갑일 수도 있으며, 싸구려 에로 영화의 과감한 노출과 섹스씬일런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들을 스펙터클로 구분지어 부를 수 있다. 백과사전은 '스펙터클(Spectacle)'이란 단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만들어진 모습에 의해 기억될 만한 사건." 예컨대 '만들어진'이라는 건 '연출된'이란 소리고, '모습'은 말그대로 겉으로 나타나 생긴 모양을 뜻한다. 전자는 영화 등의 예술에 적용할 수, 후자는 시각적인 모든 것에 붙일 수 있는 표현이다. 맞다, <놉>은 스펙터클을 경계하자고 말하는 영화인 것이다. 그건 멍청하게 공산품처럼 만들어진 현대의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들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적인 해석 바깥으로 나와 현실에도 갖다붙일 수 있는 경고이기도 하다. 안그래도 가짜 뉴스가 난무하고, 딥페이크 등의 기술로 거짓된 비디오들이 범람하는 시대. 조던 필은 우리가 살고 있는 그 현실에도 광역기를 시전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게 감독의 의도였든 아니였든 간에, 그마저도 조던 필이 그동안 쌓아왔던 업보다. 앞서 말했던대로 무언가 분명 있다는 진실 혹은 착각을 유도케했던 게 그 본인의 이전 작품들이었으니. 때문에 영화 중간중간 이야기에서 소격되는 순간들도 분명 존재했다. 대상이 동물 또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라는 것 정도를 빼면 오프닝에서 소개되는 침팬지 주디의 학살 장면과 진 재킷의 장면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 두개의 이야기가 서로 잘 붙는 느낌이 아닌데? 이뿐만 아니라 보는동안 종종 '감독이 분명 뭔가 의도를 갖고 만든 장면일 거야!'를 생각하게 하느라 정작 이야기에서는 멀어지게 만드는 부분들이 왕왕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놉>은 흥미로운 영화다. 당신이 분석할 거리를 찾아냈든, 아니면 찾지 못했든. 그도 아니면 애초 찾을 생각도 없었든 간에. 그리고 무엇보다, <놉>은 호러와 SF적으로 재미있는 이미지들을 잔뜩 만들어낸다. 살아있는 비행접시가 인간들을 잔뜩 빨아먹는 이미지나, 외딴 집 위에 떠올라 소화 덜 된 피를 잔뜩 뿌려대는 모습 등은 정말이지 재미나다. 영화감독이 되기 이전에 이미 방송작가와 코미디언으로서 훌륭한 역량을 보여줬던 조던 필이지만, 아마 초현실주의를 주제로 화가가 되었으면 그건 그거대로 또 대성했을 듯 하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