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외계 생명체의 충돌. 물론 그 전에 이미 비디오 게임도 있고 소설과 만화도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실사 영화 기준으로 이 매치는 2004년에서야 성사되고 만다.
짧은 지식으로 알고 있기로는, 실상 두 프랜차이즈는 당시 20세기 폭스가 모두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빼면 딱히 연결성이 없었다. 그러던 중 <프레데터 2>에 장난처럼 들어간 제노모프 두개골 이스터 에그로 인해 이 모든 사단이 난 것. 그런데 이렇게 우발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것 치고 둘의 설정은 꽤 잘 맞아 떨어진다. 무엇보다 잘 어울린다고. 둘 다 호러 장르를 베이스로한 영화 속 주인공이기도 했거니와, 한 쪽은 독고다이 사냥꾼인데 또 다른 한 쪽은 물량으로 승부보는 인해전술 군집체. 또 그 독고다이 사냥꾼 쪽은 명예와 각종 의례의식들을 중요시 여겨서 사냥을 위해 인간들을 제노모프의 숙주로 만들었고, 또 그에 이용당한 군집체 쪽은 여왕을 중심으로 복수 아닌 복수를 꿈꿨다-는 스토리. 다른 건 모르겠고 이 두 캐릭터를 맞붙인 것은 지금 기준으로도 여러모로 합당해 보인다.
물론 엄청 괴상한 영화인 것은 맞다. 우아하다 못해 고혹적이기까지 했던 제노모프의 연쇄살인마적 자태는 B급 영화의 제왕 폴W. S. 앤더슨에 의해 단순한 액션성 괴물로 그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이전 시리즈들을 통해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구축해나가던 프레데터 또한 인간과 손을 잡고 본격 버디 무비를 펼쳐냄으로써 이상하게 모양 빠지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하지만 이런 크로스오버 기획들이 으레 그렇듯, 그 퀄리티가 괴상한 만큼 어쨌거나 괴상한 재미도 준다는 점에서 아주 처참하다고 하기는 뭐함.
그러니까 방향성의 문제다. 각 프랜차이즈에서는 영화의 주인으로서 군림하던 두 캐릭터가 프로레슬링 판에 올라오면서는 애초 갖고 있던 카리스마와 힘은 모두 없어진채로 잔뜩 희화화되고 있는 느낌. 두 기존 프랜차이즈에 대한 호러 영화적 애정이 깊었던 팬들에게 있어 이 이상의 능욕은 더 없을 것이리라. 하지만 원래 이런 프로레슬링이 다 그런 거잖아. 그건 고지라와 킹콩이 맞붙을 때도 그랬고 프레디와 제이슨이 맞붙을 때도 그랬다. 사실상 기존 프랜차이즈들과는 별개의 우주로 봐야지. 그리고 그걸 설명하는 '스핀오프'란 아주 좋은 단어가 있고.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게 본 편. 정말이지 '시간 때우기'라는 표현에 더 적절할 수가 없는 영화. 다만, 인간 주인공에게 제노모프 머리 방패를 만들어주고자 쭈구려 앉은채로 그 시체를 손질하던 프레데터의 모습에서 볼 때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생선 다듬는 아주머니가 자연스레 겹쳐져 매번 당혹스러움. 그냥 저냥 시간 때울 수 있는 미덕이 있긴 한데, 영화 역사에 남을 만한 두 캐릭터를 이렇게까지 끌어 내려도 되나 싶기도 하고. 아, 이런 게 바로 길티 플레져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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