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8 13:31

프레이 극장전 (신작)


최상위 포식자를 뜻하는 '프레데터'란 제목대신, <프레데터> 시리즈의 신작은 그 제목으로 피식자 또는 먹이감 정도의 의미를 갖는 '프레이'를 택했다. 기존의 시리즈 기조와 완전히 반대되는 제목. 그래서 짧은 생각을 했었다. '아, 이번 영화는 프레데터 보다 인간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나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시리즈에서 그렇지 않은 작품이 있었나? 기본이 액션 호러였으니, 프레데터가 온전한 단독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영화는 전무했었잖아. 1편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그렇고, 2편의 대니 글로버도 그렇고. 언제나 인간 시점이 물리적으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었나. 헌데 왜 이번 영화 제목은 <프레이>인 건가.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나서야 알았다. 이 영화에서의 피식자는 인간 주인공인 나루가 아니라 프레데터였다는 것을. 이역만리 먼 행성까지 와서 아메리칸 원주민에게 처절하게 사냥 당하는 은하계 최강의 전투 종족. 근데 그 꼴 보는 게 꽤 재밌더라. 

영화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먹고 먹히는 냉혹한 먹이사슬 생태계다. 아무 것도 모른채 앞으로만 직진하던 개미는 어느 순간 들쥐에게 잡아먹히고, 또 그 들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뱀의 손쉬운 사냥감이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뱀을 사냥하는 건 프레데터. 또 있다. 토끼는 살기 위해 미친듯이 내달리지만 끝내 늑대에게 잡히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늑대를 또 사냥하는 건 프레데터. 여기에 중반부 나루를 쫓던 곰을 프레데터가 또 사냥하는 이미지까지 더할 수 있을 것. 영화는 그렇게, 지난 몇 십여년에 걸쳐 이른바 '야만'적인 민족이라며 대중문화를 통해 호도 당하기만 하던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세계를 그 야만적인 프레데터로 다뤄낸다. 먹이사슬의 먹고 먹히는 관계가 그러하듯, 야만이라는 관점도 상대적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기존 시리즈의 팬이라면 다소 당혹스러운 상황과 설정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프레데터가 기존 이미지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는 점이 가장 크겠지. 기존 시리즈들 보다 오히려 더 과거 시점을 다루고 있음에도 프레데터의 여러 무기와 기술들은 예전 묘사에 비해 훨씬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내가 그토록 의문스럽게 여기던 방수 기능 전무 투명화 기술도 이번엔 물 속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비디오 게임에서 본 듯한 수납형 방패도 멋지고. 하지만 기술적으론 그렇게 강해졌는데도 정작 프레데터는 일개 인간에 불과한 나루에게 처참히 털린다. 물론 나루가 추적과 함정 관련 스텟을 열심히 찍었다는 건 알겠는데... 어쨌거나 물리적 완력으로는 불리한 게 사실이잖아. 그렇담 각종 함정들과 꾀로 프레데터를 제압하는 모습이 더 묘사 되었으면 좋았을 것. 지금은 오빠랑 동생이 쌍으로 프레데터를 개팬다. 

그럼에도 사냥꾼 vs 사냥꾼의 구도로 이야기를 이끌어내 기존 시리즈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일신 했다는 점, 아예 몇백 년전의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해냈다는 점 등은 확실히 흥미를 돋군다. 다 보고나서 생각한 건데, 그냥 이런 기조로 앞으로의 시리즈를 쭉 진행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계속 역사 속 이야기만 해보자는 거지, 적어도 당분간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명예를 귀히 여기는 무신계급은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해왔다. 그러니까 프레데터 vs 중세 기사, 프레데터 vs 스파르탄, 프레데터 vs 사무라이, 프레데터 vs 바이킹 등등 해보면 어떨까 싶었음. 

이번 프레데터도 더럽게 못생긴 건 미안하게도 팩트인데, 이전에 보아왔던 프레데터들과는 다른 못생김이란 것도 재밌었다. 원래 애들이 그냥 더럽게 못생긴 정도였다면, 이번 <프레이>의 프레데터는 못생기기도 더럽게 못생겼고 무엇보다 성질도 더러워 보였음. 근데 또 나무와 나무 사이 잘 날아다니며 인간들 도륙 작살나게 해대더만. 얘네 종족은 못생기면 못생길수록 싸움을 잘하는 건가보다. 

덧글

  • 잠본이 2022/08/29 09:58 # 답글

    전투력을 위해 잘생김을 희생했으나 더 지독한 놈들을 만나는 바람에 소용이 없어져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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