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3 15:59

풀타임 극장전 (신작)


파리 근교에 사는 쥘리는 이혼 후 두 아이를 혼자 기르고 있다. 장난이 심한 두 아이를 혼자 기르는 것도 힘들건만, 심지어 그녀의 직장은 파리 중심가에 있는 한 5성급 호텔.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에 따라 그녀의 집과 파리의 직장을 이어주는 대중교통편은 모조리 연착되거나 취소된 상황. 새벽 4시에 시작되는 쥘리의 삶은 그토록 힘겹고 버겁다. 그런 그녀가 자꾸 꾸는 꿈은 가족들과 함께 단란했던 그 예전 바닷가의 기억. 그렇게 그녀는 자신에게 밀려들던 파도를 그리워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밀려오는 것은 무거운 내일이다. 

파리와 그 근교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그냥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경기도민의 삶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나마 한국이면 대중교통이 그렇게 마구 취소되는 일은 없겠지, 쥘리는 새벽 4시부터 하루를 시작함에도 밀리고 밀리다 못해 사라진 기차와 버스들 때문에 거듭 지각을 맛본다. 계속되는 지각과 실수에 상사와는 껄끄러워지고, 동료들과는 불편해지며, 아이들에겐 미안해진다. 그럼 주말엔 어떨까? 모든 직장인들이 출소하는 심정으로 한결같이 기다리는 바로 그 날, 주말. 하지만 우리는 쥘리가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엄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침 둘째의 생일과 겹쳐버린 주말, 쥘리는 주말에도 아이들을 축하하고 또 돌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풀타임>이 흥미로운 것은 그 톤 앤 매너에 있다. 영화는 이른바 '일상 스릴러'를 표방한다. 보통의 스릴러 장르를 꾸미는 연쇄살인이나 강도, 납치 따위가 <풀타임>에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쥘리가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치 스스로를 데이비드 핀쳐의 혼외 자식으로 생각 하기라도 하는양 스릴러로써 자기 자신을 재정비한다. 쥘리의 정말로 전쟁같은 출퇴근길은 빠른 편집과 짧은 쇼트, 급박한 음악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살인이나 강도 등의 스릴러적 사건들을 실제로 얼마나 겪겠나. 보통의 우리는 연쇄살인범과 한 골목에서 마주칠 일도, 적금 깨러 갔다가 은행 강도들과 맞닥뜨릴 일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통의 우리 모두 '지각'과 관련해서 저마다 심장이 쫄깃해졌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버스와 열차를 놓치고, 택시를 붙잡으며 읍소하다가, 결국엔 회사에 지각하는. <풀타임>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그 스릴넘치는 일상적 순간에 장르적인 터치를 부여한다. 먹고 살기 위한 우리네 삶은 그 자체로 스릴러다. 

주름질 틈을 용납치 않는 팽팽한 삶의 장력. 쥘리의 일주일을 보며 나는 무척이나 괴로웠다. 모든 걸 다 이만 끝낸 뒤 쉬고 싶은데, 죽기 아니면 그럴 방법이 없어. 하지만 그냥 또 죽자니, 시퍼렇게 어린 두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차마 영상과 대사로는 표현되지 않은 쥘리의 그런 마음이 자꾸 내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괴로웠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래서 감독에게 고맙더라.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인생은 원래 불행한 거야"라는 불편한 진실의 말 대신, "조금 영화적이더라도 쥘리에게 이런 마무리를 선물해도 괜찮을까요?"라고 관객들에게 물어보는 것 같은 엔딩. 그리고 쥘리의 일주일을 충실히 따라왔던 관객이라면, 그 누구도 감독의 그 물음에 "NO"라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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