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총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영화는 그 시작부터 자막을 통해 밝힌다. 그러니까, 이것은 주인공 율리에가 겪었던 연애사며 그 지도다. 그리고 영화는 예고했던 그 프롤로그를 통해 율리에의 성격을 관객들에게 보여 준다. 예컨대나쁘게 말하면 그녀는 변덕스러운 여성이며, 좋게 말하면 관심사가 다양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갖춘 여성이다. 그렇게 그녀의 기준은 계속해서 바뀐다. 의대를 선택했던 이유는 자신의 높은 성적을 다른 이들에게 증명하고 싶어서, 이어 심리학을 선택했던 이유는 외과의 수업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고, 또다시 사진작가의 길을 선택했던 이유는 그것이 재밌었고 또 스스로에게 재능이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변화무쌍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연애사 역시 만만치 않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대단한 연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묘사하고 있는 연애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고 또 목도하는 종류의 이른바 '평범한 연애'에 가깝다. 누군가를 만난다. 그리고 뜨겁게 사랑한다. 그러다 또 다른 이를 만난다. 어쩌다 뜨겁게 사랑한다. 그렇게 이전 연애는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후에는 이전 연애를 이따금씩이나마 그리워한다. 그 평범하고 또 당연한 연애의 현실적 사이클을 영화는 반복한다. 허나 그 뻔해보이는 연애 시퀀스 안에서 흥미를 돋구는 건 사랑을 느끼고 그 상대를 그리워하는 율리에의 밖으로 뻗어나오는 감정들의 묘사다. 영화내에서 묘사되는 두 연애 상대, 악셀과 에이빈드를 통틀어 율리에는 사랑하게 될 사람을 수많은 사람들 한 가운데에서 명징하게 찾아낸다. 싸우다가도 품에 안긴다. 또 다소 추잡하긴 하지만 상대에게 소변 누는 모습과 방구 소리를 공유하고, 담배 연기와 뒤엉켜 내뿜은 숨을 상대의 숨으로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에게 가기 위해 온 세상을 멈추고 홀로 달려낸다. 적어도 관계에 있어 율리에는 언제나 적극적인 쪽이다.
연애라는 사랑의 과정을 다뤄낸 지금까지의 여러 멜로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들이 그랬듯,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또한 상대의 단점들은 세월에 씻겨 모조리 휘발된채로 그 장점만을 추억하는 포스트 연애 이야기다. 연애를 할 땐 싸울 수도, 서로에게 상처를 안길 수도, 상대에게서 도망갈 수도 있다. 서로에게 최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랑이 지나간 후 돌이켜 보았을 땐 언제나 최선으로만 기억되는 것일까. 물론 그건 비단 연애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인간사 모든 관계와 경험들이 다 그렇지. 그런데도 그것은 유독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치명적으로 군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것이 결국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다 알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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