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괴와 납치의 역사는 곧 스릴러 장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유괴는 숱한 스릴러 영화들이 차용해왔던 소재다. 그러니까 뻔하다고. 그리고 뻔한 소재 아니냐는 그 비판에 <리미트>는 답한다. "그렇담 유괴에 유괴를 더하면 어떨까?!" 1+1 할인 상품도 아니건만, 그렇게 1+1 묶음 유괴는 시동을 건다.
열려라, 스포 천국!
자칫 흥미로울 수는 있었던 모티프다. 한 여자 아이가 유괴 되는데, 그 사건에 배정된 주인공의 아들이 동일한 유괴범들에 의해 또 유괴된다는 설정. 그러니 아들을 구하고 싶으면 유괴된 소녀의 몸값을 조심히 잘 가져오라는 유괴범들의 이중협박. 듣기만 해도 딜레마가 충만히 차오르는 기초설정 아닌가. 아-, 주인공은 엄마로서 아들을 구해야할지, 아니면 경찰로서 다른 집의 딸아이를 구해야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겠구나. 그 딜레마가 주인공을 자꾸 옭아매겠구나. 그러면서도 두 아이를 모두 구해야한다는 압박과 부담 역시 가중 되겠구나. 이 정도면 공산품처럼 만들어지는 요즘 충무로의 스릴러 영화들 중에서 꽤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는 걸?
두각은 개뿔, 기대감만 또각 하고 부서진다. 주인공은 딜레마를 겪지 않는다. 오직 아들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에. 물론, 엄마로서 자신의 아들을 구해야겠다는 욕망이 가장 먼저인 것은 맞지. 하지만 그럴거면 왜 이중유괴를 영화가 설정해놨냐고. 제대로 쓸 생각도 없었는데 왜 그런 구성을 짜놨던 거냐고. 쓸거면 써야지. 지금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오직 아들 하나만 보고 달린다. 그런데 만약 주인공이 자신의 아들과 다른 집의 딸아이 모두를 구하려 투신 했었어도 사실 소용 없었을 것이다. 영화가 애초부터 그 다른 집 딸아이를 일종의 맥거핀으로만 쓰고 있거든. 알고보니 그 소녀는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사실. 반전이라면 재미없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이정현이 연기한 소은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물론 그녀는 죽도록 구르고 죽도록 뛴다. 아들의 목숨이 걸려있으니. 그러나 정작 주요 사건들은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고 알아서 해결된다. 딸아이를 유괴당한 그 다른 집 엄마의 사정과 정체는 관객들과 극중 경찰들에게 알아서 까발려지고, 아동 인신매매에 관여되어 있던 의사는 같은 편에 의해 사망, 그리고 유괴범 일당의 막내는 경찰들에 의해 사살된다. 또 유괴범들 중 박명훈이 연기한 준용은 다른 이의 자동차에 치여 사망. 그나마 그 두목 격인 혜진은 소은이 처리하지만, 그건 사실상 영화와 혜진이 많이 봐준 거고...
무엇보다 영화의 제목이 왜 '리미트'인지도 잘 모르겠다. 제목값 하려고 영화가 자꾸 스톱워치를 켜두긴 하는데 그게 영화의 내용과 딱히 연관 되지도 않고, 그걸로 극중 긴장감이 배가되는 것도 아닌데... 왠지 제목 대충 지어두고 핑계거리로 마지막에 유괴 사건에서의 골든 타임이 갖는 중요성을 자막으로 박아놓은 것 같은 인상. 하여튼 여러모로 김빠지고 맥빠지는 영화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결국 또 하나의 양산형 충무로 스릴러로 남게 된 <리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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