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6 15:01

블랙폰 극장전 (신작)


조 힐이 쓴 동명의 단편 소설을 리메이크한 <블랙폰> 속 세계는 1970년대 미국 덴버로, 최근 몇달새 동네 소년들이 하나둘씩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와중엔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여동생과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 주인공, 피니가 있다. 자기 주변 또래의 소년들이 그래버라고 불리우는 괴물에게 잡혀가고 있으나, 피니에게는 그래버를 만나기 전에도 이미 일상이 전쟁이었다. 집에서는 아버지를 참아야 하고, 학교에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망나니들한테서 버텨야 한다. 그렇게 인생에 걸쳐 당하고만 있던 피니는, 비로소 그래버를 만난 뒤에야 스스로를 온전히 지키고자 각성한다. 물론 거기에는 도움이 있다.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며 자신을 찾는 여동생, 그리고 조금 먼저 떠났지만 풀지 못한 한이 애통해 이승에 남은 것인지 붙잡히고 갇힌 피니를 계속 찾아와 조언 아닌 조언들을 건네주는 선배 피해자들의 전화. 그렇게 유령들은 "나처럼 되지 마"란 일념으로 뭉쳐 피니를 돕는다. 

70년대, 덴버, 소년들 이야기. 혹자는 여기서 벌써 스티븐 킹의 향기를 느꼈을 수도 있겠다. 아닌 게 아니라, <블랙폰>은 정말로 스티븐 킹 영화 같다. 아, 이것은 평소 스티븐 킹을 흠모하던 작가의 오마주인가? 그럴지도. 하지만 원작이 되는 단편 소설의 작가 조 힐의 이력을 조금 살펴보니, 그것은 오마주를 넘어 선천적인 유전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이 아니고, 조 힐은 스티븐 킹의 실제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이야기에서, 주인공 또는 그중 한 명으로 새로운 피해자가 설정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들은 대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노력하다 사건에 얽혀들어 살인마의 표적이 된다. 허나 <블랙폰>은 정반대의 구도를 다룬다. <블랙폰>의 주인공은 현재 시점에서 유괴되어 죽음 앞에 선 소년이며, 그를 돕는 건 오히려 이미 떠나버린 자들의 몫이다. 그 차이로 메시지가 완전히 달라진다. "먼저 떠난 너희들의 한을 풀어줄게"가 아니라, "우리가 당했던 일을 너는 겪지마"에 더 가까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우리가 당했던 일을 너는 겪지마"에는 여러 목적이 섞여있다. 생전 피니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던 로빈은 순수한 우정의 관점에서 그를 행했을 것이나, 생전 피니와 가깝기는커녕 오히려 으르렁대는 사이였던 빌리 같은 경우엔 그래버에 대한 복수심이 주된 동력에 더 가깝다. 이렇듯 먼저 떠난 자들의 목적과 태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어쨌거나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피니를 도와 그래버를 짓이기는데에 성공한다. 복수 성공이기도 하고, 피니 구출이기도 하다. 일석이조 일거양득의 결과에 힘을 보탠 건 오로지 아이들 뿐이다. 갇힌 아이와 찾는 아이, 그리고 떠난 아이들까지. 

<블랙폰>의 세상 속 어른들은 모두 위압적이거나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묘사된다. 두 아이를 너무나도 깊이 사랑하지만 알콜 중독에 빠져 끝끝내 가죽 벨트까지 휘두르게 되는 피니의 아버지는 결국 그래버의 그것과 겹친다. 열심히는 하지만 정작 성과는 내지 못하는 형사들과 그래버의 착하되 멍청한 동생은 결과론적으로 합일을 이룬다. 이 도움받지 못하고 위협적인 어른들의 세계에서, 오로지 아이들만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들을 구원 해낸다. 썩 스티븐 킹스러운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덧글

  • 잠본이 2022/09/19 10:52 # 답글

    죽은 자가 힘을 합쳐 산 자를 구원하다니 이 무슨 뉴타입스러운(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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