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7 12:57

12명의 성난 사람들, 1957 대여점 (구작)


제목처럼, 12명의 사람들이 모인다. 친아버지를 죽인 어린 소년을 징벌하기 위해 배심원이 되어 모인 12명. 사실, 어쩌면 이 사건은 일곱번째 배심원 말마따나 너무도 명확해서 얼른 끝마치고 야구 경기나 보러갈 법한 종류의 것이었다. 죽인 사람이 있고, 죽은 사람이 있고. 그리고 그 모든 걸 증명해줄 목격자까지 있었으니. 소년의 유죄는 확실해보였다. 1/12의 사나이가 물음표를 띄우기 전까지는.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왜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가치있게 여기고 또 다뤄야하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예시이며, 더불어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본질적 속성들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12명의 배심원들은 모두가 각자의 성격과 가치관대로 사건을 다루고 또 서로를 대한다. 어떤 이는 이딴 거 얼른 끝내고 각자 볼 일 보러 나가자 말하고, 다른 어떤 이는 저런 동네에 사는 꼬마는 사람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라며 마음 속의 편견을 은근히 내비친다. 또 어떤 이는 화를, 또 어떤 이는 무관심을, 또 어떤 이는 전혀 딴소리를 꺼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여덟번째 배심원의 의심이다. 그리고 그 의심 이전의 노력이다. 공감하고 헤아려 보려는 노력. 소년은 왜 아버지를 죽였을까? 어쩌면 죽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덟번째 배심원의 이러한 사소하면서도 온정 가득한 의심은 사건 전체를 뒤바꿔 놓는다. 그리고 12명의 사람들 역시 뒤바꿔 놓는 것은 마찬가지고. 

12명의 마음을 왔다 갔다 뒤집어 놓는 살인사건이 이야기 바깥쪽에서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아니, 눈에 띄지 않아서 눈에 띈다고 해야하나.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배심원단이 들어찬 좁은 방 하나에서만 진행되며 그 바깥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거기에는 과거 회상이나 인물들의 의심과 추리로 재연된 방 바깥의 영상 따위가 없다. 모든 것은 온전히 구전으로만 전해진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동안 관객 역시도 그 방 안에 12명의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엄밀히 따지면 성난채로 모여있던 사람들은 열두명이 아니라 열세명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는 바로 당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누군가는 시간 낭비라고 말했지만 알고보면 그것이 민주주의다. 한 명의 인생 전체를 위해 모두가 조금씩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 하나를 위해 모두가, 모두를 위해 하나가 뛰어드는 일.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인간의 영역 뿐이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그렇게 민주주의의 가치 뿐만 아니라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오마주까지 해낸다. 결국엔 옳은 판단을 선택해낸 12명 모두가 위대해졌지만, 어쨌든 간에 헨리 폰다가 연기한 여덟번째 배심원이 최고의 영웅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다. 여덟번째 배심원은 민주주의 그 자체이며, 또 인간성의 화신이기도 한 것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