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해에서 온 괴물>과 <놈은 바닷속으로부터 왔다>는 1950년대 초 만들어진 장르 영화의 기틀로써 꽤 단순한 설정과 줄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 또는 이기심이 태초의 거대 존재를 깨우고, 또 그 거대 존재가 대도시에 상륙함으로써 깽판을 친다는. 뭐랄까, 뻔한 이야기들이 변주없이 뭉텅뭉텅 붙어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바로 그 점에서, <방사능 X>는 놀랍다. 1954년에 만들어진 작품이, 당대로써는 꽤 혁신적인 기술력과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세부적인 부분에서의 꺾기마저 지극히 현대 영화스럽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미지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미스테리 추적극으로 시작된 초반부, 드넓은 평야와 구불구불 좁은 개미굴 안에서 크리쳐 장르 영화로써의 소임을 다하는 중반부, 여기에 하수도 아래에서 펼쳐지는 인질 드잡이의 후반부까지. <방사능 X>의 주요 얼개는 2000년대에 만들어진 현대 영화라고 해도 믿을 지경인 것이다.
개미라는 생물이 갖는 작디작은 생명체란 이미지와 군집체적 요소가 영화 내에서 다방면으로 활용되어 재미있다. 주인공 삼총사가 화염방사기 들고 개미굴 내로 들어가는 장면은 <에이리언2>의 전신이라 해도 믿을 지경. 맵을 엄청 잘 쓴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상술했듯 전개 내에서 각종 꺾기를 시도하기 때문에 그 스테이지의 디자인 또한 중요 요소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영화의 포문을 여는 첫 사건은 미스테리하게 박살난 트레일러에서 시작되고, 이어지는 스테이지는 드넓게 펼쳐진 황야. 여기에 복잡하게 얽힌 개미굴과 하수도 내부를 순차적으로 붙여냄으로써 자꾸 배경을 바꿔 준다. 그냥 거대 개미들이 나타나 날뛰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미스테리물이 되기도 하고 또 추적극이 되기도 하는 등 자꾸 꺾어줘서 좋다.
메인 캐릭터였던 보안관이 생각지도 못하게 리타이어한다는 점도 인상적. 게다가 영화의 결말은 마치 요즘 유행하는 세계관 연동 유니버스 영화들의 첫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방사능의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는 식의 결말이라니... 마치 그 이후 나온 모든 방사능 괴물 영화들의 프리퀄인 것처럼 느껴져 그런 영화들이 넘쳐나는 2022년 지금 보기에 괜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여하튼 여러모로, 사실상 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전신처럼 보이는 작품. 현대 블록버스터의 외형은 이미 1954년에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리메이크고 뭐고 필요없이 이건 그냥 이대로 냅둬도 충분히 유효성 있다 본다.
뱀발 - 주인공 보안관을 연기한 제임스 휘트모어는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
덧글
잠본이 2022/10/04 10:29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