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해에서 온 괴물>과 <놈은 바닷속으로부터 왔다>, <방사능 X>가 크리쳐 영화의 고전으로써 현대 영화에 영향을 끼친 작품들이라면, <지구 vs 비행접시>는 같은 의미에서 현대의 여러 외계인 침공 영화들에 전범이 되어준 영화 되시겠다. 이걸 고예산으로 밀어붙인 게 롤랜드 에머리히의 <인디펜던스 데이>인 거고, 또는 설정만 유지한채 완전 반대의 방향으로 비틀어 버린 게 팀 버튼의 <화성침공>일 것. 그리고 이 영화의 영향을 받은 외계인 침공 영화들은 비단 이 두 편만이 아닐 거고.
제작되고 개봉된 당시의 상황 때문에 항상 제 2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냉전 시대 돌입에 대한 영화적 코멘트라 설명되는 작품이다. 그렇듯 이미 그쪽 방향으로는 많이 설명된 영화일 것이기 때문에 그걸 더 얘기하는 건 의미 없을 것 같음. 하지만 그럼에도 딱 하나 얘기하자면, 결국 중요한 건 선빵적 요소라는 거다. 외계인들은 지구의 과학자에게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전파 받지 못했던 미군이 먼저 냅다 선빵 갈기는 것으로 사건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결국 세계대전이든 냉전이든 어떤 방식의 전쟁이든 간에 먼저 치는 놈이 파국을 맞을 것이다-라는 프로파간다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웃겼다. 물론 결국 영화 내에서는 선빵친 미국이 이기긴 하지만.
비행접시에서 내린 멍청한 디자인의 수트를 입은 외계인들이 쏴대는 광선. 그거 맞으면 박살나거나 도륙되는 느낌이 아니라 타겟이 그냥 증발하는 듯이 묘사 되던데. 진짜로 그냥 증발 되는 건가? 그런 생각도 해봤다, 죽이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어딘가로 텔레포트 시키는 기술 아냐?-라는. 물론 그 경우에는 그 '다른 어딘가'가 어디인지까지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냥 영화내적으로 궁금 해졌다.
끝내 외계존재들을 퇴치하는 필승의 무기로 제시되는 것은 음파 공격이다. 이같은 설정은 <화성침공>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물론 이는 영화적으로 설득력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이번엔 영화외적으로 짜증나는 지점이 생기는데, 다름이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 귀가 존나 아프다는 것. 영화의 후반부 클라이막스에 들어서면 주인공 무리가 외계인들 다 때려잡겠다고 시종일관 사이렌 비슷한 거 울리고 다니는데 그것 때문에 내 청력이 깎이는 느낌이었다. 외계인 잡으랬더니 생사람을 잡고 있네... 영진위 시네마테크에서 기획상영으로 본 영화였는데 그 부분에서 만큼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꽂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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