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7 13:57

인생은 아름다워 극장전 (신작)


여자는 담배도 태우지 않는데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이에 남편은 툴툴 거리면서도 아내의 옛 첫사랑을 찾아주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리고 이 여정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튀어나오는 대중가요 히트곡들.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만을 위한 오리지널 넘버를 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기존에 존재하는 대중가요들을 이야기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기획. 일단 영화내외적으로 모두 말은 된다. 일단 영화내적으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을 영화로 비유하며 종종 그 순간에 맞는 대중가요를 선곡해 듣지 않는가. 연인에게 차인 직후엔 시내버스를 탔더라도 '이별택시'를 들어야지. 연애 경험이 전무하더라도 창밖에 비가 내리고 혼자 쓸쓸한 밤이면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틀어야 하는 거고. 그 때는 유리창에 '널 사랑해'라는 말도 한 번쯤 썼다 지워 봐야지. 또 드라이브할 때는 싸이 노래처럼 신나는 거 플레이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렇듯 우리는 항상 인생을 살며 그 순간순간마다 각자의 OST를 대중가요에서 픽업하기 때문에 이는 영화내적으로도 썩 이해가 가는 선택이다. 시한부 판정 받은 여자가 첫사랑 찾아 전국팔도를 유랑한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곡이 몇 개야. 

영화외적으로는 더 말이 된다. 아마 그 누구도 음악의 힘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꼭 뮤지컬 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라는 매체에서 음악을 빼면 그 파괴력이 50% 이하로 급감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이미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들을 채워넣는다? 내가 이 영화 기획자였어도 벌써부터 군침이 싹 돈다. 아, 영화 개봉하고 잘 되면 수록되어 있는 곡들이 각종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들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 하겠구나!-라는 단꿈을 안 꿀 수가 있냐고. 

그래서였을까.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 대중가요의 힘을 과신한 듯 보인다. 일단 시한부 판정 받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뻔할진대, 그 세부 요소들도 모두 주인공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만들어진 뻔한 장애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아, 여자가 아파? 그럼 당연히 남편은 무뚝뚝하거나 퉁명스러운 가부장적 존재로 설정 되어야지. 그런데 자녀로 남매가 있어? 그럼 둘다 각자의 방식으로 부모를 괴롭혀야지. 한 명은 공부하는 척 하지만 안 하거나, 또다른 한 명은 아이돌 가수 쫓아다니면서 엄마 말 안 듣거나. 그리고 실제로 이 모든 것들이 다 일어난다. 

특히 퉁명스러운 남편 캐릭터는 치명적이다. 물론 류승룡 특유의 귀엽고 재미난 표정과 제스쳐로 이를 중화 시키곤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 말이 안 된다. 제아무리 가부장적인 남자였다 하더라도 아내가 폐암 말기 판정 받았으면 최소한 그렇게 굴면 안 됐던 거잖아. 이건 영화 막판에 '알고보니 사실은 남편도 아내를 신경 쓰고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반전 따위로도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다. 

더불어 뮤지컬 장면의 투박하고 촌스러운 연출도 아쉽다. 수록된 곡들이 옛날 곡들이라고 해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점이 80년대의 옛날이라고 해서 연출도 옛스러울 건 없지 않았나. <헤어스프레이>를 봐라. 극중 배경은 60년대인데도 불구하고 뮤지컬 넘버 시퀀스는 하나도 촌스럽지가 않다. 극중 배경은 현재지만 <라라랜드>를 봐라.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 역시 염정아와 류승룡처럼 전문 뮤지컬 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세련된 연출로 그 모든 걸 커버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걸 못했다. 차라리 극중 흐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은 낫지, 류승룡과 고창석 위주의 고깃집 뮤지컬 장면이나 염정아와 류승룡의 고속도로 휴게소 뮤지컬 장면 등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고 춤추는 부분들은 모두 어딘가 모르게 촌스럽다. 

한마디로 노래 하나 믿고 달린 영화. 너무 과신한 거 아닌가 싶었다는 거다. 그런데...그런데... 문제는...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영화가 대중가요의 힘을 과신할만 했다는 것. 화면은 촌스러운데 귀는 호사스럽다. 노래를 두 곡이나 수록한 이적의 목소리는 나올 때마다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몰아붙이고, 주인공의 군 입대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는 왠지 모를 애수를 불러일으키며, 80년대를 배경으로 너무나 적절히 터져나오는 신중현의 '미인'은 역시나 흥겹다. 그러니까 적어도 영화를 보는동안 크게 지루하다거나 고루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안 듦. 

그러니까 오히려 더 영화가 얄미운 것이다. 엄청난 힘을 가진 노래들로 밀어붙여 결국 무혈입성한 느낌. 근데 또 그게 관객으로서 마냥 싫지 만은 않는 느낌. 어쨌든 영화 덕분이었을까, 극장을 나서서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이게 영화의 힘인가, 음악의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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