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9 16:28

블론드 극장전 (신작)


문제가 있다. <블론드>가 진짜 마릴린 먼로의 삶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 영화는 조이스 캐럴 오츠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전개된다. 그런데 애시당초 이 소설이 말그대로 '소설 그 자체'였다는 데에서, 이 문제는 기인한다. 극중 마릴린 먼로의 삶은 실제 마릴린 먼로의 삶에 비해 훨씬 더 자극적으로 조명되어 있고, 삶에 대한 그녀의 태도 역시 훨씬 더 나약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극중 마릴린 먼로가 보이는 여러 행동과 태도들, 그리고 그로인해 겪은 여러 사건들은 실제 마릴린 먼로의 삶과 꽤 큰 간극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하지만 <블론드>는 극중 전개와 실제 이야기 사이의 이러한 간극에 대해 관객들에게 해명해주지 않는다. 해명은커녕 고지하지 조차 않는다. 그리고 이는 아주 큰 고인 모독이 된다. 솔직히 말해, 마릴린 먼로는 그 전성기가 1950년대에서 부터 1960년대까지였던 인물로 지금은 작고한 상태이기 때문에 요즈음의 세대는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영화는 더 큰 모독이 된다. <보헤미안 랩소디><로켓맨>이 그러하였듯, 일반 관객들은 이같은 영화들을 두고 일종의 전기영화로써 그 안에 담긴 대부분의 내용들을 실제였다는 전제 하에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고로 <블론드>는 실제 마릴린 먼로의 삶을 충실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각색해 일반적인 전기영화의 구성을 취했어야 했거나, 또는 지금처럼 가더라도 최소한 오프닝 이전엔 이같은 사실을 자막으로 나마 고지 했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둘 다 안 했지. 

설사 극중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 모두 실제였다 하더라도 영화는 문제투성이다. 애초 이 영화가 일반 대중들의 화제를 모으는데 일조 했던 노골적이고 생생한 섹스 묘사와 나체 묘사? 물론 이 영화엔 그게 있다. 그게 그 소문만큼이나 노골적이고 생생했으며 또 영화적으로 좋았었는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할 문제지만. 하여튼, 극중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 또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 진행되는 그러한 묘사들은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블론드>의 그 묘사들은 불편하기만 하고 영화의 핵심 주제를 건드려내지 못한다. 걔중 가장 불편했던 것은 의외로 영화 속 쓰리섬 장면도, 대통령과의 오럴 섹스 장면도 아니었는데 그건 다름아닌 <7년 만의 외출> 속 그 장면을 리바이벌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내가 마릴린 먼로의 삶을 다룬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었어도 <7년만의 외출> 속 그 아이코닉한 장면은 한 번쯤 넣어야만 했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블론드>는 선을 넘는다. <블론드>는 그 부분을 여러번의 반복된 편집과 마릴린 먼로의 속옷 속으로 서서히 기어들어가는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자극 일색으로만 담는다. 실제 삶에서나 극중에서 모두 파파라치를 비롯한 대중매체의 시선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면서, 정작 영화 또한 그런 관점으로만 그녀를 담아낸다. 이게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 모든 것들을 건너 뛰어서도 영화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 물론 때때로 좋은 부분들도 있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을 통해 촬영과 조명의 유희를 보여주었던 앤드류 도미닉은 이번 영화에서도 종종 그런 순간들을 빚어낸다. 쓰리섬 장면 중 침대 끝자락이 나이아가라 폭포로 치환되는 장면은 극중 인물들이 느낀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들을 이미지로 담아낸 부분이라 흥미롭다. 더불어 아나 드 아르마스는 외적인 유사성과 더불어 훌륭한 연기력으로 마릴린 먼로를 재창조 해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영화는 인물을 관객들에게 마지막까지 설득시켜내질 못한다. 그게 진짜든 가짜든 전기영화 비스무리한 영화인데 주인공이 매력없음 끝난 거지. 극중 마릴린 먼로의 선택들은 대부분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에 이해되지 않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징징대는 일차원적 인물로만 그려져 관객들의 지루함을 산다. 

가만히 있어도 고인 모독에 재미 없는 영화일진대, 심지어 상영시간까지 거의 3시간에 달하니 참으로 여러 의미에서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라 하겠다. 화면비와 색상까지 자꾸 바꿔가며 관객들을 밀어내는 영화던데 결국 나도 저 밖으로 떠밀려버림. 

덧글

  • 잠본이 2022/10/11 09:55 # 답글

    역사왜곡이면 재미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거도 아니라니 거참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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