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3 14:13

블랙 아담 극장전 (신작)


캐릭터와 세계관 소개를 채 제대로 하기도 전에 그냥 관객들 눈앞으로 데려다놓는 성급함. 나는 지금까지 그게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는 마블을 보며 DC가 내놓은 궁여지책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유명한 캐릭터라 해도 벤 애플렉 얼굴을 한 배트맨은 우리 모두 처음 보는 것일진대 첫등장 하자마자 갑자기 그를 은퇴 직전의 모습으로 냅다 던져두는 방식? 그래, 뭐... 조급하면 그럴 수 있지. 실사 영화 기준으로는 아쿠아맨이나 플래시, 심지어 원더우먼마저 그 등장이 처음이건만 오리진 스토리 없이 그냥 냅다 갈기는 구나. 그래, 뭐... <어벤져스> 보고 후달렸을 수 있지. 그런데 이제 <블랙 아담>까지 보고 나니, 그게 DC의 궁여지책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뻔뻔함인 것 뿐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아닌 게 아니라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스킵하고, 또 정작 설명이 필요없는 것 같아 보이는 부분에서는 질척질척대며 늪으로 빠진다. 솔직히 몇천 년 전 칸다크의 챔피언 탄생 설화가 그토록 길 필요가 있었냐? 이미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 시장은 과포화 상태잖아. 구구절절 다 설명하지 않았어도 그 고대 칸다크 설화는 충분히 다 이해될 만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재밌게 설명한 건 또 아니면서. 

그래놓고 정작 제일 설명이 필요해보이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그 멤버들은 단체 패키지 갑툭튀를 시전한다. 물론 원작에서는 그들이 세계 최초의 수퍼히어로 팀이었다는 것도 알고, 닥터 페이트가 옆동네의 닥터 스트레인지보다 훨씬 더 고참이라는 것 역시 안다. 하지만 언제나 말했듯 이건 영화 아닌가. 그럼 영화 안에서만 설명이 다 끝나야지. 그나마 몇 편의 영화들을 통해 소개된 저스티스 리그라면 좀 나았을텐데, 여기 나오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진짜 다 초면. 생각해보니 그거 같다. 만남을 준비하고 나오는 소개팅도 아니고, 친구가 불러서 나갔는데 그 자리에 나 소개시켜주려고 어물쩍 부른 생면부지의 사람이 앉아있는 상황. 호크맨이랑 닥터 페이트는 뭔데 너네끼리 벌써 친하냐? 나랑은 생짜 초면인데. 나한테 인사도 제대로 한 적 없으면서 왜 둘이 오랜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는둥 어떻다는둥 하고 있는 거냐고. DC도 어째 점점 친목 영화로 나아가는 것 같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닥터 페이트는 멋지지만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속 닥터 스트레인지가 떠올라 난감해진다. 원작에선 한참 선배라지만 실사 영화 기준으로는 후발주자인 것을 이 어찌할꼬. 호크맨과 아톰 스매셔 역시 마찬가지다. 각각 엑스맨과 앤트맨을 떠올리게 하니까. 그나마 처음본다 싶었던 건 사이클론인데... 얘의 능력 묘사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게 양키 센스인가...?-하는. 아니, 그냥 내가 이상한 건가? 어쩌면 내가 비정상이고 저 유치한 빙글빙글 묘사가 오히려 올 휴먼카인드 센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너무 무서운데?

사탄 들린 왕관. 칸다크의 모두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걸 찾고 있다 하는데, 정작 찾아내는 건 전투 능력이 0에 수렴하는 한 아줌마와 동료 아저씨들이다. 아니, 무슨 <인디아나 존스> 마냥 여러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트래킹 조금만 빡세게 하면 나오는 동굴 안에 버젓이 떠 있던데? 이걸 지금까지 못 찾고 있었던 인터 갱 걔네들은 대체 뭐냐... 그리고 걔네한테 지배 당하고 있는 칸다크는 대체 또 뭐고...

극후반부에 들어서야 사박이 등판하는지라 영화내내 정확히 악당이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그게 특정 안 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좀 있음. 실상 vs 사박보다 vs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장면이 훨씬 더 많아서, 그냥 프로 레슬링의 로얄럼블 이벤트 보는 것 같아 정신없었다. 

드웨인 존슨은 블랙 아담 역할을 하기에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도 그를 연기하는 걸 즐기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블랙 아담 또한 슈퍼맨과 비슷한 딜레마를 겪는다. 너무나도 강한 존재이기에, 액션에 있어서는 즐길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 빠르고, 강하고, 비행가능하며 번개까지 쏘는 남자.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강하기만 해서 한 판 붙는 게 인터 갱 졸병들이든, 호크맨이든, 사박이든 간에 별다른 감흥이 안 생긴다. 그나마 <맨 오브 스틸>은 액션에 대한 주위 환경들의 리액션으로 조금 만족스러운 게 있었는데 <블랙 아담> 이쪽은 그런 것조차 전무한 느낌이네. 

그리고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악당 또는 안티 히어로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인데 얘는 또 왜 정의로운 거냐고... 원작처럼 막판에 그 왕좌 앉았으면 조금 폭군 같아 보여도 그냥 그 자리 갖는 게 좀 더 그럴 듯 하지 않았을까? 애초에 마냥 정의로운 민주주의 캐릭터가 아니니 말이다. 사람 마구 죽이는 폭군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면서 정작 하는 짓은 민주투사처럼 그리고 있음. 아, 그리고 영화내내 호크맨이 블랙 아담에게 "히어로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라고 하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너네 지금까지 사람 많이 죽이지 않았어...? 이쪽 세계 배트맨은 등장부터 기관총 들고 갈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슈퍼맨도 조드 장군과 싸우며 메트로폴리스 반파 시켰고 말야...

수퍼히어로 장르는 웨스턴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미국적인 장르라, 그 주인공을 묘사함에 있어 어느정도는 미국 그 자체를 은유할 수 밖에 없다 생각한다. 슈퍼맨은 미국인들이 보는 가장 이상적인 미국의 모습이며, 반대로 배트맨은 미국 바깥의 세계 시민들이 보는 가장 현실적인 미국의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블랙 아담> 또한 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되는데, 좀 웃긴 게 이 영화에서는 되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미국 같다. 남의 나라 가서 깽판치고, 이게 정의니까 알아서 받들라고 하는. 그런데 칸다크 사람들은 그들에게 뭐라 말하는가. 독재로 신음하고 있을 땐 나서서 도와주지도 않더니, 이제와서야 우리 최고의 무기를 빼앗겠다? 이쯤되니 블랙 아담은 핵무기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안 그래도 칸다크는 느낌이 딱 중동 아시아잖아. 결국 결론. <블랙 아담>은 내정 간섭하려는 서구 세계에 우리도 우리만의 핵무기를 가질 것이라 천명하는 중동 아시아 국가들의 민족 자결주의 선언문처럼 보였다는 것. 존나 오바 맞긴 한데 실제로 그렇게 느껴져서 다른 할 말이 없었다. 

핑백

  • DID U MISS ME ? : 2022년 대문짝 2022-10-23 14:14:08 #

    ... / 도미니언 / 브로커 / 라이트이어 / 박찬욱 / 사랑과 천둥 / 외계인 / 비상선언 /불릿트레인 / 서울대작전 / 양자경 In 멀티버스 / 블랙 아담 / 와칸다 / 드림 / 바빌론 / 스트리밍 / 마걸사2 / 피랍 / 원더랜드 / 교섭 / 승부 / 바이러스 /&nbsp ... more

덧글

  • 포스21 2022/10/28 21:02 # 답글

    확실히 서사.. 랄까? 내용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꽤 남는 영화였네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