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8 17:57

블레이드, 1998 대여점 (구작)


물론 그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원작이 되는 마블 코믹스의 것이었겠지만, 어찌되었든 뱀파이어가 실존하고 이미 그들이 그들만의 언더 월드를 구축했다는 설정. 그리고 그들을 때려잡기 위해 활약하는 뱀파이어 신분의 뱀파이어 사냥꾼이 있다는 점 등은 매력적이다. <언더 월드> 시리즈  보다도 빠르고 <반 헬싱> 보다도 더 현대적이니. 

엄청 오래 전에 본 뒤 다시 감상한 거라 기억이 뒤틀려있던 건지 뭔지, 나는 이 영화가 굉장히 진지하고 어둡기만 했던 걸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적절히 딴판. 아니, 뱀파이어 소재 영화다보니 화면이 보통 어두운 건 맞지. 허나 분위기마저 마냥 어둡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 유머가 많아 이게 맞나 싶어진다. 내 기억 속의 블레이드는 과묵하고 냉철한 뱀파이어 헌터였는데, 정작 제대로 목도한 그는 은근한 자뻑 기질에 허세 충만한 동네 형이었음. 

웃긴 건 그 유머가 일정 부분 내게 먹혔다는 것이다. 물론 요즈음의 MCU 영화들처럼 그 유머 빈도가 많다는 건 아님. 기껏해봐야 블레이드가 이상한 미소 짓거나 괴상한 추임새 내는 게 전부인데, 기묘하게도 그게 내겐 대부분 먹혔다. 뱀파이어들 다 때려잡겠단 목표만 진지한 사람이었던 거지, 그 과정에서는 그야말로 즐기는 자. 누구나 말하지 않나,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고. 그래서 뱀파이어들이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며 데이워커를 피해 도망다니나 보다. 

더불어 오컬트적 면모도 눈에 띈다. 내 기억에 2편과 3편은 끽해봐야 뱀파이어와 그 별종들을 일종의 생물학적 부산물 정도로 나름 현실감 있게 표현했던 것 같은데, 1편은 말미에 진짜로 악마 형상을 한 뼈다귀들이 이쪽 세계로 넘어와 파닥거리며 깽판 놓는 분위기. 근데 그거랑은 별개로 영화의 중심 악당이 너무나 허접하게 죽었다. 존나 괴랄한 표정과 몸짓들 선보이다가 끔찍하게 사망. 

개봉년도가 1998년이다. 세기 말 분위기가 충만했던 시절이었고, 또 <매트릭스>가 나오기 1년 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는 이 당시 유행했던 이른바 '테크노 액션' 내음을 잔뜩 풍긴다. 물론 그 누구도 이 '테크노 액션'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뭘 뜻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보면 안다. 특히 <블레이드>는 그 오프닝부터가 썩 '테크노 액션'스럽다. 아마 이 당시의 기성 세대들은 조명이 번쩍이는 시끄러운 클럽에서 문란하고 무언가 염세적인 파티를 벌이는 것이 젊은 세대들의 대표 이미지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거 하면 뭔가 세기 말 느낌나고 젊은 애들이 좋아하겠지- 싶은. 지금도 MZ세대랍시고 갈라치기하는 것처럼 아마 그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웨슬리 스나입스의 블레이드는 확실히 인상적이다. 존나 잘 싸우는 비정한 사냥꾼인데, 어딘가가 왠지 모르게 푸근한 동네 형 느낌의 다크 히어로. 아니, 근데 이 형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뱀파이어 박멸에 목숨을 거는 거야? 자신을 임신했던 자기 엄마를 뱀파이어들 때문에 잃었다 생각해서? 물론 그거 엄청 큰 사건이긴 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인생 전체를 한 종족 박멸에 갈아넣을 정도로 엄마에 대한 사랑이 깊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쯤 되면 뒷골목에서 어린 블레이드를 냥줍 하듯이 줍줍했던 휘슬러의 가스라이팅이 아니었을까. 

핑백

  • DID U MISS ME ? : 블레이드2, 2002 2022-10-28 18:26:06 #

    ... 이 더 강조된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lt;헬보이2&gt;에서의 누아다 왕자도 딱 그 포지션 아니었겠는가. 게다가 배우도 동일. 리퍼들 디자인 진짜 징그럽게 잘했고, 전편부터 시작된 전통 아닌 전통으로 주인공 가둬놓고 탈출시키는 전개 역시 성실하게 재현. 이렇게 했으면 솔직히 말해 델 토로 입장에서는 잘 해준 거 아닌가 싶어진다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