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이 있는 블록버스터 속편 영화의 고용 감독일 뿐이었음에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작가주의적 재능을 용기있게 마구 내질렀던 기예르모 델 토로. 기대치가 전무 했던 상황에서 그가 빚어내 갑자기 툭 튀어나온 명작. 그리고 이 정도면 당시 <미믹>과 <악마의 등뼈>가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음에도 그런 델 토로를 감독 자리에 앉힌 제작사의 두둑한 배짱도 인정해줘야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 세계에서 자주 반복되는 요소들이 다분히 재현된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져 일종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서 자신을 불러낸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품고 있는 인물, 선물보다는 저주에 더 가까워보이는 초능력, 전편보다 더 강조되는 괴물인데 괴물을 잡아야하는 상황에 대한 아이러니, 탐욕스런 왕인 아비와 왕권 다툼을 벌이는 왕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최후를 맞는 공주. 여기에 특유의 괴물 디자인과 그 묘사까지. 아마 델 토로도 만들면서 신났을 게 뻔하다.
지구 최강의 뱀파이어 헌터라는 어마어마한 감투가 무색하게도 여전히 푸근한 동네 형 느낌의 블레이드. 그가 그를 잡기 위해 훈련된 뱀파이어측 특수부대와 공조를 벌이며 참으로 다채롭게 꼽을 주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뭔가 아저씨스러워서 재미있다. 특히 론 펄만 싸다구 챱챱 후두러 까는 장면은 다시 봐도 진기명기. 이렇게 영화의 주인공은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가는데, 악당은 존재론적 자기혐오를 앓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비극적인 인물이란 것도 재미있음. 따지고 보면 주인공 포지션은 오히려 이쪽 아닌가. 그런데 델 토로는 그런 인물일수록 악당으로 남아야 그 비극성이 더 강조된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헬보이2>에서의 누아다 왕자도 딱 그 포지션 아니었겠는가. 게다가 배우도 동일.
리퍼들 디자인 진짜 징그럽게 잘했고, 전편부터 시작된 전통 아닌 전통으로 주인공 가둬놓고 탈출시키는 전개 역시 성실하게 재현. 이렇게 했으면 솔직히 말해 델 토로 입장에서는 잘 해준 거 아닌가 싶어진다. 기존 시리즈의 설정과 분위기는 잘 이어 받았으면서도, 작가로서 스스로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새로운 면모까지 더해준 고용 감독. 아마 클라이언트는 무척이나 기뻐하지 않았을까. 다만 그 기쁨도 3편 넘어가서는 말짱 도루묵 신세 되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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