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은 그 당시 기준 지금의 MZ세대와 비슷한 컨셉으로 막나가는 젊은 악당을 상정 했었고, 2편은 감독의 개성에 발맞춰 저주받은 왕자로 말미암아 블레이드를 상대하게 했다. 그렇다면 3편은? 아, 왜. 원래 이런 수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서는 주인공보다 악당이 누군지가 더 궁금하고 재밌는 법이잖아. 제작진도 그런 기대감을 알았던 건지 뭔지,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을 작품이니 큰 악당 한 번 거하게 써보자 싶었던 모양이다. 이번에 등판한 건 한 때 드라큘라라는 이명으로도 불리었던 고대의 뱀파이어. 한마디로 원조 뱀파이어가 블레이드에 맞선다.
사실 3편은 앞선 두 편의 아성을 모두 한 방에 무너뜨려버린 망작이다. 때문에 단점도 줄줄이 다 읊으려면 뱀파이어 마냥 하룻밤 다 써도 모자랄 판국인데,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악당 선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는 그럴 듯 하다. 시리즈 완결작이니 끝판왕을 데려오겠다는 아이디어. 허나 2편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가 단기간 내에 쌓았던 신화적 맥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뱀파이어 모셔다놓고 이 정도 카리스마에 이 정도 활약 밖에 보여주지 못하니 악당 먼저 무너져버린 수퍼히어로 영화에 미래가 있을 리가.
일단 메인 악역의 동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후손들이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는데도, 그리고 또 그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데도 굳이 걔네 도와서 블레이드랑 맞섬.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건가. 게다가 모든 뱀파이어들의 조상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 보유자인데도 하는 짓들은 창피한 수준이다. 스티브 로저스 마냥 잠들어 있다 여러 세월을 놓쳐버린 과거의 인물로서 잠깐 그려지기도 하는데, 그걸 묘사하는 방식이 기념품 가게 직원 털어 먹기...... 여기에 그토록 강하다면서도 블레이드 앞에선 꽁무니 빼다 심지어 아기까지 유괴 및 스루 패스. 이 새끼 그냥 미친 새끼 아냐, 이거?
그리고 이 모든 얼빠진 묘사들에 허접한 디자인과 안타까운 캐스팅이 한 몫씩을 더한다. 설정상 인간 형태와 본래 형태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나본데, 그 본래 형태가 너무 촌스럽고 조악해 B급 전대물의 악당처럼 밖에 안 보임. 더불어 캐스팅은... 도미닉 퍼셀이 나쁜 배우란 건 아니지만, 시리즈의 최종 보스로서 너무 카리스마나 연기력이 부족하잖냐. 악당 설정부터 글러먹었으니 영화가 재미없는 건 당연지사.
여기에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진부하디 진부한 블레이드의 동료들 역시 한탄스럽다. 제시카 비엘의 여전사 기믹은 이 때도 마찬가지였구만. 그리고 라이언 레이놀즈... 이 양반은 참 한결 같았네. 그나마 요즈음은 올바른 방향으로 터져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더라. 하여튼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은 진부하고, 그 액션 역시 때때로는 과시적이다가도 또 시간 지나면 우스워져서 오락가락.
블레이드가 흔적을 남기게 되면서, 뱀파이어 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의 추격 역시 받게된다는 설정은 참으로 좋았다. 사실 1편과 2편 보면서도 내내 해봤던 상상이니까. 다만 그거 하나만으로 쭉 갔어도 괜찮았을 전개에 쓸데없이 끝판왕 선보이겠답시고 원조 뱀파이어까지 불러내 이야기가 흐리멍덩해진 느낌. 여기가 장충동도 아닌데 왜 이렇게 원조들 찾고 난리야.
결과적으론 다른 의미에서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은 작품. 차라리 1편이나 2편이 이런 퀄리티였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그래도 마지막 작품이 좋게 끝나면 전체 인상이 바뀌잖아. 하긴, 1편 퀄리티가 이랬으면 애초 2편조차 나올 수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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