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들어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역사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진부한 리메이크나 과도한 PC를 말하는 게 아니다. 팬들을 위한 팬 무비를 만들면서 정작 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짓거리들을 작품 내에 마구 때려박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씨발 대체 누가 주인공으로 스핀오프 한 시즌을 만들 만큼 피스메이커를 좋아해?
물론 그건 철저히 내 기준에서만 생각해 뱉은 말일 뿐이다. 세상에 마상에, 이 지구상에 존 시나의 피스메이커를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 한 둘쯤은 있겠지.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고. 그러나 명백한 건 그가 할리 퀸이나 블러드스포트, 폴카 닷맨은 갖지 못한 스핀오프 TV시리즈를 혼자 가질만큼 그들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초 매력 없어 보이던 미친놈을 주인공으로 앉혀 놓은 TV시리즈이니 기대감이 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TV시리즈라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게다가 8부작이잖아. 여덟개 에피소드면 피스메이커가 어떤 인물인지를 설명하고 또 그가 어떤 매력을 지녔는지 시청자들에게 보여줄만한 시간은 충분했지. 그리고 실제로 TV시리즈는 몇 번 정도 인상적인 순간들을 다뤄낸다. 예를 들면 그토록 과격했던 피스메이커가 홀로 남아 차분히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이라든지...
그러나 나머지는 몽땅 무매력이다. 일단 징징대며 유아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는 그의 모습이 딱히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거나 그러질 않고 그냥 짜증남. 팀의 리더를 맡은 먼이 피스메이커의 베이비시터 역할처럼 느껴지는데, 계속 보다보면 아- 그 베이비시터는 이 시리즈를 보고 있는 우리였구나-라는 생각에 더 기가 빨린다. 그렇다고 수퍼히어로 장르로써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는 건 또 아님. 육박전이나 특수 기술 등의 묘사는 너무 적었고 또 생각보다 더 허접했다.
PC로 불리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스탠스나 분열주의, 또 환경주의적 이슈 등으로 현시대의 여러 문제들을 이야기 안으로 끌고들어온 것은 인상적이다. 허나 제임스 건의 재담꾼 타이틀에 대한 과한 집착이 이야기 전체를 잡아먹는 것은 문제적이다. 제임스 건? 좋은 감독이지. 그 옛날의 <슈퍼>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것들, 또는 DC 세계로 넘어와 만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나는 좋아했으니. 하지만 이 드라마에 와서야, 이 양반 역시 마이클 베이 마냥 좋은 제작자가 옆에 붙어 적당히 견제해줘야 되는 인물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그걸 충실한 작가주의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마이클 베이야말로 작가주의의 최전선에 선 일류 작가주의 감독이지. 여덟 에피소드 내내 쓸데없는 신변잡기로 농담 따먹기를 해대는데, 처음 한 두개 에피소드에서는 별 내용 없는 대사들로도 이런 대화를 만들 수 있다니-하며 탄복하지만 나중엔 그 자체에 지쳐버리게 된다.
이건 조금 딴 소리인데, 버터플라이 종족이 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짓거리들 보면 이거야말로 저스티스 리그급 위기 아니냐? 근데 얘네는 왜 내내 안 오다가 지각 등장이람. 사실 이건 세계관 공유 프랜차이즈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자 단점이긴 해서 그냥 농담.
뱀발 - 아만다 월러의 딸로 밝혀지는 아데바요. 임무에 지쳐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 말하자 그의 연인이 다 그만두고 고담으로 돌아가자 말하더라. ......고담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할 정도면 임무 강도가 대체 얼마나 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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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본이 2022/11/01 11:02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