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16:25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 극장전 (신작)


이전 시리즈와 MCU의 세번째 페이즈를 일선에서 이끌었던 주연배우의 갑작스런 퇴장. 준비되지 못했던 이별에, 그에 대한 추모는 적어도 영화에게 있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였을 것이다. 이전의 주연배우와 그가 담당했던 캐릭터에게 작별을 고하고 또 그의 유산을 성실히 물려받아 새 캐릭터에게 부여하는 일. 그런데 그것만 했어도 모자랐을 판국에, 영화는 아예 새로운 세계를 또 더해 소개함과 동시에 전편과 마찬가지로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메시지 역시 던져내려 한다. 근데 결국 다 못함. 심지어 영화 상영시간이 거의 3시간에 달하는데도. 

물론 <블랙팬더 - 와칸다 포에버>가 다루는 주제는 의미있다. 조금 더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문호를 개방한 와칸다. 하지만 19세기 제국주의자들과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당했듯, 선의의 자세로 문을 열었던 와칸다 또한 서양 세력들의 화전양면 전술을 맞닥뜨리고야 만다. 앞에선 평화를 빌미로 자원과 정보를 공유해달라 말하지만, 뒤에선 그를 빼앗기 위해 총칼을 들고 침략하는 상황. 국제적으로 고립된 와칸다의 이러한 현재는, 이번 영화를 통해 세계관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네이머의 탈로칸과 공명한다. 

네이머와 탈로칸의 존재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무엇보다, 비록 그것이 <블랙팬서>와 <샹치>에 이어 이번엔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주머니를 털어먹기 위해 바꿔 설정된 것이 조금 노골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네이머의 인종 변경은 재미있다. 마블 입장에서야 어찌되었든 DC의 <아쿠아맨>을 의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을 것. 이미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는 DC의 아틀란티스와 비교될 바에는 아예 중남미 문명을 베이스로 삼겠단 아이디어가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는 상술했던 메시지와 더불어 잘 겹쳐지는 설정이다. 아프리카 못지 않게 17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큰 피해를 봤던 곳이 중남미를 포함한 신대륙 아닌가. 에스파냐 침략자들을 피해 바다로 헤엄쳐 들어갔던 네이머와 그의 사람들은 2022년 MCU내의 와칸다와 좋은 짝패를 이룬다. 과거에 붙잡혀 살 것인지, 아니면 그 아픔마저도 이겨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와칸다와 탈로칸은 서로 대립하되 비슷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또 바로 거기에 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제국주의 & 식민주의의 상흔을 들여다보는 기획? 좋다 이거야. 허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게 '미국 영화'라는 것이다. 물론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 입장에서야 억울할 일이다. '이렇게나 다뤄볼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음에도 우리의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에 문제란 말인가?' 당연히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관객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우리 식민 지배 받았거나 침략 받을 뻔했던 과거지사는 다 잊어야 해. 그래야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어!"라고 외치는데 그걸 멕시코 땅 뜯어가고 필리핀을 지배했던 나라의 영화에서 당당히 하는 게 불편하다고. 누군가는 요즘 말마따나 프로 불편러라고 비꼴 수도 있고, 또 일정 부분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좀 이상하잖아. 심지어 극중에서 미국인들이 저런 메시지를 드높이고 있는 것도 아냐. 적어도 그랬다면 최소한 '과거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의 반성적 태도가 드러나는 구나'라며 옹호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헌데 영화 속에서 그런 메시지를 붙잡고 있는 건 오히려 아프리카 사람들과 중남미 사람들이다. '불편하다'는 표현이 조금 강한 것 같다면 '어색하다'로 바꿔도 괜찮다. 최소한 어색하긴 했으니까. 

전편을 보고도 느꼈던 것인데, MCU내에 와칸다라는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고 있음에도 그곳이 영락없는 가짜처럼만 여겨진다는 건 역시 웃기는 부분이다. 아프리카 특유의 에스닉한 디자인을 최첨단 문화와 결합시키는 태도 자체는 여전히 흥미롭다. 하지만 그 시도가 흥미로운 것과는 별개로 그 자체의 진실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 맞지. 와칸다의 사람들이 걸치고 다니는 전통 의상이나 키요모 비즈 따위는 납득 가지만, 그들이 거닐고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거리와 동네는 왜인지 다 가짜같다. 저멀리 보이는 와칸다 수도의 스카이라인은 모조리 다 그린 스크린으로 합성된 것들이겠지, 그렇담 이 와칸다의 시장 바닥만 만들어진 세트일 테고. 뭐랄까, 실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비주얼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건 탈로칸도 마찬가지. <아쿠아맨>의 아틀란티스는 3D 효과를 등에 업고 화려하기라도 했지, 이 영화 속 탈로칸은 어두침침해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게 그려진다. 그냥 제작진이 와칸다에 비해 탈로칸 묘사하는 데에 별 재미가 없었던 모양. 

그래도 잘한 걸 꼽자면 예상외로 왕위계승. 티찰라의 갑작스런 퇴장에 와칸다의 왕권과 블랙팬서 자리를 모두 슈리가 물려받을 것이 영화내외적으로 당연하게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그게 걱정 안 될리가 없었다. 애초 슈리가 주인공 역할로 빛날 수 있게 세부조절된 캐릭터는 아니었다보니. 그렇지만 영화 전체가 그녀의 감정선을 나름대로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주인공으로서 슈리의 여정은 어느 정도 다 납득이 가더라. 여기에 안젤라 바셋의 라몬다 여왕은 영화의 핵심 씬 스틸러. 팔 근육 개멋있네, 이모가 아니라 누나라 부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쭉 했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래서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로써 숙제는 다 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전편에 가진 불만도 그거였잖아, 메시지는 중한데 장르적 쾌감은 가벼웠던 거. 그 점에 있어 이번 속편은 전편만 못하다. 이미 전편부터가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로써 허약 체질이었는데 그보다 못한 속편이라니 알만 하지 않은가. 그나마 볼만 했던 건 오히려 오코예와 네이머의 행동 대장들이 다리 위에서 펼치던 일기토. 그런데 어째 메인 프로타고니스트와 메인 안타고니스트가 벌인 클라이막스 속 일기토가 그에 더 못하냐. 새로운 블랙팬서와 네이머의 대결은 그냥 웃기더라. 아니, 둘은 처절해서 더 웃겨. 그 장면은 그냥 수영복 빤스 입은 네이머가 너무 웃겼다. 양발에 파닥몬 하나씩 신고 있는 것도 그렇고.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 MCU 페이즈 4는 그야말로 대실패라 하겠다. 물론 일정 부분 만족한 영화들도 있었다. 세간의 평가에 비해 나는 <이터널스>를 무척이나 재밌게 보았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역시 불호 보다는 호에 조금 더 가까웠다. 여기에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은 엄청나게 그럴듯 했었지. 하지만 샘 레이미라는 전설을 기용했음에도 중구난방이었던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담당배우의 헌신에도 밍밍하기만 했던 <블랙 위도우>, 그리고 그 둘마저 다시 보니 선녀처럼 보이게끔 만든 <토르 - 러브 앤 썬더>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사상 최악이었다고 본다.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쪽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여기에 대미를 장식한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로 인해 페이즈4는 아주 그냥 와장창 신세. 향후 페이즈 5 들어 반등할 여지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마블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 페이즈 3까지의 10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화양연화였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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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22/11/28 10:48 # 답글

    슈리는 감정적으론 이해가 가는데 너무 호리호리하다보니 액션에 어울리는 흑표대왕이 되기엔 애매했죠.
    차라리 스피드나 발사무기 특화로 오빠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메시지의 어색함은 뭐... 미쿸은 거의 하는 거 없이 변죽만 울리고 뒤로 빠져있는 것도 좀 속보였다 싶고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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