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17:14

데시벨 극장전 (신작)


웃기지만 사실 조금 기대했었다. 미스테리한 이유로 벌어지는 연쇄 테러. 전직 군인 주인공. 전화통화로 연결되는 주인공과 테러범 사이. 이거 누가 봐도 8~90년대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의 맥락이잖아. 그걸 내가 안 좋아할 수 있냐고... 조금 뻔하고 노골적인 우라까이여도 이번에는 괜찮으니까, 부디 최소한도의 장르적 재미만 덧붙여주면 냅다 엎드려 절할 수도 있었다. 제발 그 시절 그 때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 감성을 부채질해줘... 그럼 정말로 압도적 감사!하며 삼보일배를 했을 텐데. 정작 영화를 다 보고나니 삼보일배를 해야하는 건 내가 아니라 영화였고. 

이젠 하다 하다 뭐 새로운 게 없으니까 소리에 반응하는 폭탄이라네-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신선하게 느껴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대체 저걸 어떻게 묘사할지. 그러나 막상 본 영화에서는 데시벨 폭탄이란 요소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막말로 100 데시벨 넘으면 터진다고 하는데 대체 왜 그렇게 설정해놨나 싶음. 그냥 평범한 시간 폭탄으로 바꿔 설정했어도 영화의 설정이나 재미에 하등 영향을 끼치는게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없느니만 못한 설정. 

오히려 조금 괜찮다 싶었던 건 과거 시점에 존재하는 잠수함 내부의 설정이었다. 공리주의적 해결책으로 죄책감에 빠진 주인공과, 그 반대로 복수심에 사로잡힌 악당의 구도. 비록 이러한 설정과 관점 역시 지금까지 많이 다뤄져왔던 게 사실이건만, 그래도 영화의 현재 시점에 비해 이 과거 시점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던 건 어쩔 수가 없다. 물론 그럼에도 이 과거 시점을 설명하기 위해 꼭 편집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은 생각은 듦. 

정상훈의 캐릭터와 박병은의 캐릭터는 둘 모두 8~90년대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에서 주인공 곁을 지켰던 코믹 감초 캐릭터와 변모하는 진지한 조력자 캐릭터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 그 구도는 좋아. 근데 그것 역시 잘 썼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코믹 감초 캐릭터는 주인공과 너무 갑작스레 엮이는 건 물론이고 별반 재미가 없고, 변모하는 진지한 조력자 캐릭터는 그 변모의 지점이 너무 얕다. 활약도 뭐 별 게 없고. 김래원이 연기한 주인공은 다소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멋질 수 밖에 없는 인물이긴 했다. 그럼에도 별반 매력이 없었던 것은 매한가지...

그러나 가장 최악은 이종석이 연기한 악당 캐릭터다. 이종석이라는 배우에게는 평소 아무런 불만이 없다. 이번 영화에서 조차 마냥 연기를 못했다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다만 이것은 캐릭터 해석의 문제였다고 본다. 악당의 동기와 행동은 모두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그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너무나도 전형적인 길만을 간다.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웃다 울다를 반복하고, 나 이렇게 위험한 사람이야-를 온몸으로 강조하며 표현하고. 기타 등등. 안그래도 영화가 8~90년대 영화같은데 이 악당 때문에 더 그렇게 보임. 

영화를 보기 전엔 8~90년대 액션 바이브를 그대로 이식한 작품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실상은 '여러 의미에서' 정말로 8~90년대 영화 같은 작품. 우와~ 진짜 8~90년대 액션 영화 같다~ 근데 안 반갑다~

덧글

  • 잠본이 2022/11/18 08:50 # 답글

    안 좋은 부분만 8~90년대스러운 거군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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