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3 10:44

그 남자, 좋은 간호사 극장전 (신작)


영화의 원제는 그저 '좋은 간호사'를 뜻하는 "The Good Nurse"일 뿐이지만, 국내 정식 제목에서는 그 '좋은 간호사'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지칭하고 있다. 그 남자, 좋은 간호사. 그 제목대로 찰스 컬렌은 짐짓 좋은 간호사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병원에서 어머니를 잃었던 때를 기억하며 그걸 동료와 공유한다. 그리고 그로인해 환자들을 제대로 돌보게 되었다 들려주는 수줍음 가득한 고백. 그는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동료들에게 상냥한, 그야말로 좋은 간호사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그가 좋은 간호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결말부 실화에 근거 했다는 자막에 이르러, 영화는 그 '좋은 간호사'의 호칭을 다른 이에게로 돌린다. 에이미 로크런. 찰스 컬렌의 동료였던 사람. 두 딸의 엄마였던 사람.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차마 외면할 수는 없었던 진실을 드러낸 사람. 그 여자, 좋은 간호사. 영화는 나쁜 간호사를 통해 좋은 간호사를 조명하며 끝이 난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감히 사람들을 죽였다. 모두가 가장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가장 믿을 수 밖에 없는 존재 간호사. 찰스 컬렌은 그 직업의 명패를 이용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죽였다. 감히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칼과 총으로 사람들을 죽인 다른 연쇄살인마들이 오히려 더 부지런하게 보일 지경이니 말 다 했다. 찰스 컬렌은 환자들의 절박한 믿음을 근거삼아 주사기를 푹 찔러 넣는 아주 간단한 동작 하나로 악을 실천한 것이다. 배경이 되는 실제 이야기를 수사했던 형사외 전문가들은 그가 최소 400여명 이상을 죽였을 거라 보고 있다. 400번의 주사, 400번의 사망. 적어도 사람을 죽이려면 조금 더 힘들어야하는 게 맞지 않겠나. 

그것이 현실 속 실제 이야기든, 영화나 드라마 속 가공된 이야기든 간에 우리는 연쇄살인마에게 묻고 싶어진다. "왜 그랬어요?" 왜 그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거기에 어디 가당키나 한 이유가 있었던 건지 따져묻고 싶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기대한다. 아마 그도 다른 사건의 피해자였던 것은 아닐까?-하는 다소 동정 어린 시선부터, 선천적으로 싸이코패스였다거나 뭐 그런 거 아닐까?-라는 병리학적으로 논리적인 관점까지. 적어도 이유는 있겠지 싶은 것이다.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찰스 컬렌도 끝끝내 같은 질문을 받는다. 모든 걸 다 털어놓아 이미 징역형이 거의 반쯤은 확정된 상황에서, 친한 동료이자 어쩌면 인생의 동반자가 될지도 몰랐던 에이미가 묻는 것이다. "왜 그랬어요?" 그리고 이에 대한 찰스의 대답이 가히 걸작이다. 그저, "아무도 막지 않아서요."

프란츠 카프카는 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는 찰스 컬렌이 그 말마따나 선을 잘 알았는지 잘 모른다. 간호사의 이름으로 환자들에게 적어도 겉으론 부드럽게 다가갔으니 그걸 두고 선을 아예 모른다고 해야할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허나 어찌되었든 조금 더 근본적으로 선에 가까운 에이미와 형사들은 찰스의 동기를 그가 스스로 입 열기 전까진 결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에이미와 형사들은 끝까지 '그에게도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환자들을 질투했나?', '여성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등등 무언가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 헤맸을 거다.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찰스의 "아무도 막지 않아서요"는 그들과 우리들에게 잔잔한 충격을 준다. "아무도 막지 않아서요"는 "할 수 있어서요"로 번역되고, 그저 죽일 수 있길래 죽였다는 말은 그 말이 담고 있는 것 이상으로 서늘한 잔인성을 드러내 문장 자체를 주사기 바늘 마냥 뾰족뾰족하게 만든다. 심지어 찰스가 본인 입으로 이유를 말한 이후에도, 아마 에이미와 우리는 그를 한평생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토록 우리는, 악을 모른다. 

그러나 모른다고 해서 행동할 수도 없단 소리는 아니다. 결코 이해하지 못할 근원적인 악 앞에서, 우리의 작고 나약하고 아프기까지 한 에이미는 어쨌거나 행동을 해낸다. 그리고 철옹성 같은 거짓의 벽 앞에 서서 지지부진한 수사 과정 때문에 우두커니 할 수 밖에 없었던 형사들 또한 근성 있게 자신들의 몫을 해낸다. 그런 그들의 노력으로 찰스 컬렌이라는 개인의 악과, 환자들의 건강과 안전보다 자신들의 잇속에만 더 혈안이 되어 있었던 병원들의 공동체적 악 모두 그 시뻘건 비밀들을 토해내고야 만다. 그러니까, 선은 악을 모를지언정 자신이 믿는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에이미는 자신의 커리어와 건강 보험, 고로 인생 전체를 걸었다. 왜냐고? 그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저 할 수 있으니 해보겠다는 악과, 그게 옳으니 해야겠다는 선의 대결. 영화를 보는 우리들 내면의 선악 대결을 떠나, 누가보아도 무엇이 더 강해보이는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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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22/11/23 12:40 # 답글

    현실에서도 살해현장에 '날 막아줘'라고 낙서를 한 연쇄살인마가 있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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