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8 13:23

올빼미 극장전 (신작)


남한산성에서의 굴욕 이후 8년,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의 오랜 볼모 생활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오랑캐라고 여기던 자들의 땅으로 넘어가 고생도 숱하게 했었지만, 그럼에도 신문물을 통해 넓혀진 식견으로 조선을 구하고 싶었던 세자. 그리고 왕과 세자의 관계를 떠나 그저 아버지의 아들로서 인조에게 환영받고 싶었던 세자.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소현세자는 그 뜻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청나라와 조선, 왕과 세자, 그렇게 지각변동하는 거대한 세계와 그 역사. 마냥 휩쓸려 나갈 수 밖에 없을 것만 같은 이 정국 속에, <올빼미>는 아주 작은 한 개인을 혈에 침 꽂듯이 꽂아넣는다. 그렇게 맹인 침술사 경수는 요동치는 역사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기 때문에. 헌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공 경수는 힘을 얻는다.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비틀거릴지언정 더듬어서라도 옳은 선택을 해주십사, 경수를 통해 영화는 읍소한다. 사실 경수가 궁에 들어간 것도 별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입신양명에 대한 꿈은 조선의 장애인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또는 의술로써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따위의 거창한 것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는 그저 몸이 아픈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의술을 공부하고 또 궁에 들어섰을 뿐이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소현세자에 의해 일종의 개안을 하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역사를 바꿀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일어날 역사들 조차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제아무리 용을 써도 이미 패배할 게 뻔한 전쟁에서 갑작스레 극적인 승리를 거머쥘 수는 없을 것이며, 또 제아무리 기를 써도 이미 죽을 게 뻔한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의 큰 물줄기를 뒤틀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경수 또한 마찬가지고. 하지만 영화는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말한다. 한 개인의 노력으로 역사가 쉬이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올빼미>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고 역사를 바꾸려 하지 말고, 딱 한 사람을 구하고 딱 한 번의 옳은 선택을 해달라고. 궁을 거의 빠져나왔던 경수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뜀박질을 시작했던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경수 입장에서는 그저,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기 때문에. 

<올빼미>는 군데 군데 아쉬움이 느껴진다. 핵심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 지나치게 대사에 의존하는 점, 간간히 등장 하는 유머들 대부분이 불발이라는 점, 또 영화의 에필로그가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점 등이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빼미>는 시종일관 관객들을 긴장 시킨다. 그를 위해 가져온 주맹증이란 설정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 써먹고 있고, 또 인물들에게 호감을 심어줌으로써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연동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무력감과 패배주의의 세상에서, 조금 뻔한 말이더라도 바로 한 치 눈앞의 옳은 선택만 하라고 사근사근 부추기는 영화의 태도가 21세기 우리를 조금이나마 일으켜 세운다. 역사를 꺾을 수는 없지만 한 개인을 달랠 수는 있다. 인의예지, 그 당연하지만 어려운 마음의 태도가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 유학을 숭상 하던 나라의 왕은 지키지 못했던 그 네 글자를, 소위 아랫것으로 분류 되던 궁 변두리의 소경은 읽어내다못해 가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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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t;올빼미&gt;</a> (안태진) 소현세자의 의뭉스런 죽음과 주맹증이란 소재들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 먹는다. 그 두 소재가 할 수 있는 걸로는 참으로 다채롭게 다 해냈구나-란 생각이 든다. 비록 영화의 에필로그가 타협의 결과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앞선 본편의 이야기들이 확연하게 좋기 때문에 어느정도 용서가 된다. 자신은 그저 미천한 소경일 뿐이라고, 유일한 삶의 이유는 동생을 보살피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철저한 한 개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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