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1 16:30

스트레인지 월드 극장전 (신작)


<보물성> 이후 근 2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한 실패작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디즈니의 신작. 예고편으로 보아하니 미학적인 면도 훌륭해보이고, 제이크 질렌할에 루시 리우 등 목소리 캐스팅도 적당히 묵직한데 대체 왜 실패한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막상 영화를 보니 디즈니의 나태함이 느껴져 실패할만 하단 생각만 들었다. 

진짜 간단하게만 말한다면, 영화가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것. 물론 디즈니의 상업 애니메이션 신작으로써 엄청난 신식 기술력이 들어갔다는 것은 알겠어. 극중 등장하는 개의 미세한 털이나 이상한 세계의 괴생명체들을 구현해낸 기술력은 유려하다. 하지만 새 부대에 담는다한들, 헌 술이 새 술 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스트레인지 월드>는 너무나도 평범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결국엔 또 아버지와 아들 사이, 그리고 또 그 아들과 손자 사이 부자간의 갈등. 가족 관객층을 주 타겟으로하는 애니메이션 매체에서 가족 이야기가 아예 빠질 수는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그 설계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 아, 실종되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 이상한 세계에 갇혀 있겠군. 아, 아버지에게 대드는 아들? 나중에 그 아들의 아들도 자기 아버지에게 대들어 똑같은 구도를 형성 하겠군. 아, 그러자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 불화가 한 번은 조장되어야 하니까 플롯 포인트상 이쯤 되면 한 판 싸우겠구나. 그럼 화해는 어떻게 하지? 서로 심한 말 왕창 해놓고 서로 등 돌려 앉은채 잠시 쉬는 시간 가지면 또 자연스레 화해의 멘트 나오겠지. 그리고 놀랍게도 <스트레인지 월드>는 마치 정해진 신탁이라도 있는 것인양 그 뻔한 길을 그대로 뻔하게 걷는다.

물론 이는 <스트레인지 월드>만의 잘못은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동안의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다 이런 식 아니었는가. 그러니까 이건 <스트레인지 월드>만의 잘못이 아니라, 지금까지 디즈니가 알게 모르게 쌓아왔던 업보라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극중 부자 관계 관련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건 또 아니다. 극중 등장하는 이상한 세계는, 새로운 세계를 다시 한 번 만들어 내야겠다는 제작진의 부담같은 것들이 너무 느껴진다. 스튜디오 사이의 경계는 분명 있었겠지만, 어찌되었든 디즈니는 픽사를 통해 장난감들의 세계와 옷장 건너편 괴물들의 세계 등을 거쳐 우리네 마음 속 세계까지 만들어왔다. 자체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동물들이 사는 대도시의 세계나 수퍼히어로 팀이 활공하는 일본+미국의 가상 세계까지 만들었었지. 그러다보니 <스트레인지 월드> 속 지하 세계는 이젠 일종의 강박처럼 느껴진다. "아~ 할 만한 건 이미 다 했는데 하나 더 새로 만들어야하네"라는 피로 같은 것도 삐져나오는 것 같고.

이같은 단점들과는 별개로 하나 더 짚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영화의 PC 농도. 요즈음의 디즈니가 PC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야 뭐 이젠 놀라운 소식도 아니건만, 제목따라 가는 건지 이상하게도 유독 <스트레인지 월드>는 그 냄새가 진하게 난다. 영화 시작하고나서 단 10여분 만에 영화는 흑인 여성과 결혼한 백인 남성 주인공을 보여주고, 또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게이라는 것 또한 들려준다. 그들이 키우고 있는 개는 다리가 하나 없는 장애견이며, 극중 등장하는 이 가상의 국가 대통령은 동양인. 

혹시나 오해를 살까 봐 말하는 건데, 당연히 백인 남성은 흑인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고. 또한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역시 가능하며, 다리가 넷이 아닌 셋 달린 개 역시도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 될 수 있다. 물론 영어 쓰는 나라에서 동양인이 대통령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을 굳이 굳이 굳이 넣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영화 시작 후 단 10여분 만에 촤르륵 묘사해낸다. 그러니까 그 자체로 나쁘다거나 싫다는 건 아닌데, 이게 너무 초반에 몰려있다보니 그 의도가 너무 명백히 보여 좀 어색하고 웃겼다는 말. 제일 개그는 마초 히어로 할아버지가 25년만에 처음 만난 손자에게 연애 상담을 해주는데, 게이라는 게 명명백백하게 보임에도 그냥 쿨하게 넘어간다는 점. 영어 대사에서 손자는 분명 그 짝사랑 상대를 'He'로 지칭하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그걸 모를 리 없다. 물론 거대 거북이 등딱지에서 살고 있는 가상 세계인데 그게 뭐 어색할까마는. 그런데도 또 주인공은 굳이 백인 이성애자 남성인 게 또 개그.

덧글

  • 잠본이 2022/12/02 08:33 # 답글

    볼까말까 고민하다 패스했는데 볼 일은 없겠군요...
  • CINEKOON 2022/12/22 09:48 #

    안 그래도 곧 디즈니 플러스에 출시 예정이더군요. DVD나 블루레이 전성기 때와는 다르게 확실히 극장에서 2차 판권 시장으로의 이동 주기가 빨라진 느낌이예요. 특히나 이번 작품처럼 흥행에 있어 망한 작품은 더더욱...
  • 잠본이 2022/12/22 10:22 #

    코비드 때문에 극장에서 수익을 거두기가 빡빡해져서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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